여름 나기
여름 나기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7.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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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여름과 더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여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여름은 더울 수밖에 없으니, 사람들은 좋든 싫든 여름 더위를 겪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여름 더위는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여름 더위를 겪어내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누구에게나 변함없이 적용되는 것은 더위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도 마찬가지였다.


여름 나기(消暑)

何以消煩暑 (하이소번서) 어찌하면, 이 무더위를 견딜까나
端居一院中 (단거일원중) 집 안에 평소처럼 있네
眼前無長物 (안전무장물) 눈앞에 쓸데없는 물건이 없고
窓下有淸風 (창하유청풍) 창 밖에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네
熱散由心靜 (열산유심정) 마음이 고요하니, 열기 흩어지고
涼生爲室空 (양생위실공) 방 안은 텅 비어 서늘함이 감도네
此時身自得 (차시신자득)이 순간은 스스로 체득한 것이니
難更與人同 (난갱여인동)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는 어렵네

 

시인에게 닥친 더위는 그냥 더위가 아니다. 사람을 못 살게 하는(煩) 지독한 더위이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 더위 자체를 사라지게 할 방법이 없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인은 평소처럼 집 안에 혼자 머물면서 더위를 겪어보기로 하였다. 눈앞에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창 아래로는 차가운 바람이 있으니, 의외로 집 안이 더위를 견뎌내기 위한 좋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마음은 고요한 상태로 만들고, 방은 텅 비워야 한다. 그래야 더위는 흩어져 사라지고, 찬 기운이 생겨난다.

마음의 복잡한 생각들을 버리고 방 안의 쓸데없는 물건들을 치우는 것으로 시인은 더위를 물리친 것이다. 그러니 더위도 알고 보면 그 절반은 사람이 자초하는 것이다. 고요하지 않은 마음은 물론이고, 방 안의 쓸데없는 물건도 따지고 보면 욕심의 소산이니, 욕심을 비우는 것이야말로 더위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一切唯心造)고 설파한 화엄경(華嚴經)의 말이 더위를 이겨내는 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위도 결국은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 욕심을 버리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더위를 이기는 유일한 왕도(王道)가 아니던가?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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