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바느질
비의 바느질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7.07.10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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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하늘과 땅을 꿰매는 재봉질 소리에 눈을 떴다. 자작자작 허공을 박음질하는 빗소리가 귓바퀴에 쌓이며 두서없는 편안함이 이불 홑청처럼 나를 휘감았다.

내 팔을 베고 누운 영이는 혀를 내민 채 잠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쌔근거린다. 발아래서 자고 있던 철이는 내가 잠 깬 것을 눈치 챈 걸까. 겨드랑이 사이로 올라와 머리를 비빈다. 털을 짧게 깎아서인지 쫑긋한 귀와 반짝이는 눈이 영락없는 노루처럼 보인다.

오랜만에 한가로이 맞는 휴일 아침이다. 간만에 찾아온 이 편안함을 놓고 싶지 않았다. 눈만 뜨고 온몸을 침대에 널어놓은 채 요크셔테리어 두 마리를 끼고 창밖을 응시한다.

오늘 창밖엔 엄마의 재봉질 소리가 내린다. 소리를 타고 엄마의 얼굴이 하드커버의 표지처럼 떠오른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엄마. 응달에 놓은 물처럼 꽁꽁 언 삶을 살았던 엄마. 나는 엄마를 너무 오랫동안 응달에 홀로 두고 모른 척했다.

엄마는 재봉질을 좋아했다. 아니 옛날엔 난 엄마가 재봉질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북실을 감고 바늘을 꿰고 널빤지처럼 넓적한 재봉틀 발판을 구르던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엄마는 한복을 만들어 주고, 원피스를 만들어 주고, 심지어는 친구의 체육복을 보고 체육복도 그대로 만들어 주었다. 난 그 체육복이 싫었다. 엄마가 만들었기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친구들 체육복과는 조금 달랐다. 그 다름이 싫었다. 체육 수업이 있는 날엔 체육복이 든 보조가방을 교실 구석에 처박아 놓고, 옆 반 아이의 체육복을 빌려 입곤 했었다. 엄마가 재봉질해서 옷을 만들어 주던 것이, 좋아서 한 것만은 아님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조금만 따듯한 눈길로 엄마를 데워 주었다면 엄마의 마음속 얼음이 조금은 녹았을 것을.

재봉질을 하다 간간이 긴 한숨을 쉬던 엄마의 얼굴이 오늘 빗소리를 타고 명치에 콕콕 쌓인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얼굴이 하드커버 안쪽 목차처럼 펼쳐진다. 아버지는 장사를 하셔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셨다. 가끔 한 번씩 들렀다 가는 손님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한숨 같은 날들이 스치고 훅~ 입에서 바람이 새어 나온다. 오빠가 시집 사이 간지처럼 휙 넘어간다. 고개를 돌려 벽을 향한다. 빗 속에서 같이 놀던 동생의 얼굴이 하얗게 확대된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한 번도 힘들다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 정작 예전에는 맘 놓고 할 수 없었던 옛이야기 구절을 오늘에야 곰곰 읽어 본다.

이런저런 상념의 끝자락에서 난 시를 생각한다. 구겨진 원고지 같은 뇌를 뒤치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시 한 편을 티슈 뽑듯 뽑아든다.

정지용의 옛이야기구절이 쑥~ 딸려 올라온다. 누운 채 정지용의 옛이야기 구절을 주절주절 읊조려본다. 오래전 우리네 가족들이 서럽게 살다간 이야기다. 빗방울도 잠시 바느질을 멈추고 창에 붙어 내 읊조림을 듣는다. 군더더기 없이 감정을 절제하며 풀어놓은 시인의 시에 감동을 한 듯 빗물이 창에서 손을 놓고 눈물처럼 주르르 미끄러진다.

손을 놓고 허공으로 투신하는 빗물을 보며 헌신하며 응달에서 살아온 엄마의 얼굴을 본다. 아직도 응달에 서서 자식들 걱정하는 엄마에게 전화라도 넣어봐야겠다. 이젠 아랫목으로 들어오라고. 얼음처럼 춥게 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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