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을 데우며
치킨을 데우며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7.07.0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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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얼굴이 좀 빠졌더구나. 노랗게 염색한 머리는 보기 좋았어. 서로가 바쁘니 주말에도 얼굴 보기 힘들구나. 공부에 지친 너를 깨우느라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던 작년 이맘 때. 이 지긋지긋한 고3이 지나면 밝은 얼굴로 마주할 수 있겠거니 했는데 막상 네가 객지로 나가 대학생이 되니 그렇지도 않네. 너와의 소통은 전화보다 온라인 송금이 더 잦았지.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돈을 보낼 때마다 뜨거운 밥이, 시원한 냉면이 내 아들 입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마냥 흐뭇하니까.

아비는 너를 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무심하게 키웠다. 남들 다 간다는 학원조차 보내지 않았고 과외도 한번 시켜주지 않았어. 그럴 돈도 없었지만 너를 과열된 비정상의 경쟁 속에 등 떠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성공의 가치가 불투명한 사회에서 네 삶의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개척해 나가길 바랐어. 아비가 해줄 수 있는 건 읽고 쓰고 공부하는 모습을 네게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그게 어떤 과외보다 효과적이라 생각했지. 고맙게도 너는 아비의 바람대로 스스로 찾아 읽고 표현하고 사유하며 내면을 살찌웠더구나.

넌 직접 쓴 자기 소개서를 아비에게 쑥스럽게 내밀었지. 자라면서 아비에게 도움을 청한 몇 번 안 되는 일 중 하나였어. 그때 나는 아주 흐뭇했단다. 제도권 교육이라는 한정된 틀 속에서도 너는 인문학을 탐구하고 고전을 찾아 읽으며 교사에 대한 포부를 키웠더구나. 글줄이나 쓰고 책 좀 읽었다는 아비도 손볼 데가 별로 없었어. 보조사를 몇 개 걷어내고 접속사를 조금 고쳐준 게 내가 도와 준 전부였지. 너의 문장은 아비의 것보다 훨씬 간결하고 명료하더구나. 네 문장을 보며 천생 국어 선생이라고 속으로 끄덕였다.

18 대 1. 요즘 중등임용고시 국어과 평균 경쟁률이야. 수십 대 일에 달하는 공무원시험에 비하면 손쉽다 할지 모르겠으나 제한 경쟁이기에 사범대 출신들에겐 더 좁은 바늘구멍처럼 느껴질 거야. 캠퍼스의 낭만을 포기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질끈 눈 감으며 1학년 때부터 전력을 다해도 합격이 보장되지 않지. 17의 낙방이 1의 합격을 떠받치고 있는 지금의 구조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아.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 웃고 있는 너의 얼굴에서 아비는 가끔 불안을 본다.

네 엄마한테 들으니 치킨전문점에서 닭 튀기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더구나. 하루에 세 시간, 시급으로 따지면 2만 원 정도라지. 뜨거운 기름 앞에서 점주의 따가운 눈초리에 땀 흘릴 너를 생각하면 못난 아비는 가슴이 아리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아침, 식탁엔 식은 치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정성으로 튀겼을 그것을 엄마와 동생들에게 먹이고 아비의 것으로 남긴 거였어. 치킨을 데우는 시간 1분 30초. 점주의 잔소리 같은 레인지 돌아가는 소리가 왜 그리 길고 크게 느껴지던지. 피곤한 네가 행여나 잠에서 깰까 아비는 조마조마했다.

부담 갖지 마. 네가 1이 아니어도 괜찮아. 지금의 승자 독식 구조에서는 더욱 그래. 노력과 재능의 미세한 차이로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거대한 모순, 그 안에서 1은 결코 자랑이 아니야. 낙담하지도 마.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성적으로 이어지는 불합리한 경쟁 구조에서 17들은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아비 역시 네 결과를 순연히 받아들이마. 부족한 부모 탓하지 않고 성실하기만 한 네가 늘 자랑스럽다. 튀김 기름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너는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치킨을 데우며, 아비는 서럽도록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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