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종주에서 배우는 호연지기
한남금북정맥 종주에서 배우는 호연지기
  • 오원근<변호사>
  • 승인 2017.07.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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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오원근<변호사>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높고 낮음을 만드는 것은 산이다. 그 산을 따라 물은 흘러간다. 반대로 그 물을 따라 산이 흘러간다고 보면 어떨까. 이렇게 물을 따라 흘러가는 산들의 이어짐이 정맥(正脈)이다. 우리나라에는 1대간 9정맥이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내가 속한 법인 산악회에서 한남금북정맥 종주를 시작했다. 한남금북정맥은 말 그대로 한강 남쪽, 금강 북쪽을 따라 이어지는 산맥을 말한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보은, 미원, 청주, 증평, 괴산, 음성을 가로질러 안성 칠장산에 이른다. 우리 산악회는 그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산행을 해 이제 70차에 이르렀는데 이 경험이 이번에는 정맥종주를 하게 만들었다. 이제 3구간을 마친 것에 불과하지만 회원들은 다음 산행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정맥산행의 묘미에 푹 빠져 있다. 산행의 무엇이 우리를 빨아들이는 것일까?

모든 생명은 본래 자연(自然)이어야 한다. 스스로 그러하여야 하지 타율적으로 틀에 박힐 때 생명은 고유한 성품을 잃는다. 고도로 발전한 도시의 물질문명은 큰 편리를 주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서는 인간성(개성)의 상실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탐욕스러운 자본에 의해 기계의 부품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나는 남과 다른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가? 우리 아이들이 그들에게 고유한 능력을 찾아 계발하도록 가르치고 있는가? 대형마트, 체인점의 일반화로 소비자들에게 공급되는 상품과 서비스가 천편일률화된 상황에서 내가 사는 물건과 남이 사는 물건이 뭐가 다르고, 내가 사먹는 음식과 다른 사람이 사먹는 음식이 과연 다른가? 우리는 과연 존엄한 인간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인가? 산행의 매력은 생명의 회복, 개성의 회복, 자연성의 회복에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더 이상 자본의 노예로, 기계의 부품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에 가면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하면서 그도 자연이 된다. 비로소 자연임을 깨닫고 건조하고 삭막한 도시생활을 조금은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산에서 진짜 나를 만나고 나와 산(자연)이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호연지기(浩然之氣)다.

세상에서 어떤 것을 추구하든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반드시 탈이 난다. 가깝게 우리 현대사만 보아도 국가를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사유화했던 그래서 자신 뿐만 아니라 국민까지도 억지스럽게 만들었던 독재자들, 그 말로가 어떠했는가?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자가 집권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는 길지 않은 현대사가 비극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이치는 국가는 물론 모든 사회조직에 다 통하는 것이다. 우리가 호연지기를 제대로 배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산악회는 삼가저수지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윗대목골에서 천왕봉에 오르며 정맥산행을 시작했다. 윗대목골에서 바라본 천왕봉은 다른 각도에서 본 것과 달리 영봉(靈峰)의 모습이다. 정상에서 한참 머물며 상고대를 감상하고 본격적인 정맥 길에 들어선 후 또 점심을 먹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첫 구간이 갈목재까지인데 겨울 해가 짧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정맥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갈목재가 아직 한참 남은 곳에서 해가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길도 없는 곳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불안이 엄습했지만 나중에는 모두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우린 나름대로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있다.

내 사무실 책상 앞 벽에는 커다란 지도(1.5m×2m)가 붙어 있다. 한남금북정맥을 주황색 형광펜으로 이어놓았다. 정맥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은 파란색으로 그었다. 틈만 나면 지도를 보면서 한남금북정맥과 거기서 흘러나와 강으로 합쳐지는 물길 모습을 머릿속으로 가늠해본다. 난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서도 호연지기를 키우려고 한다.

/충북참여연대반부패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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