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궐 같은 기와집, 그리고 소박한
아름다움의 한국의 옛집을 찾아서
대궐 같은 기와집, 그리고 소박한
아름다움의 한국의 옛집을 찾아서
  • 김명철<청주 서경중 교감>
  • 승인 2017.07.05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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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역사기행
▲ 김명철

음성군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유적지나 역사적인 인물이 별로 없다. 그러나 한 시대를 조용히 지켜온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일반 백성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옛집 건물이 눈길을 꾼다. 음성지역에 민가 건물의 옛집을 대표하는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듯 웅장한 건물과 다른 하나의 건물은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옛집이다.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잿말 마을의 맨 위쪽에 대궐 같은 기와집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41호로 지정된 `김주태 가옥'이다. 김주태 가옥은 약300년 전에 이익이라는 사람이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나 안채는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는 1901년에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충주목사를 역임한 박규희 가문이 장기간 거주하여 박 참판댁으로도 불렸다.

이 가옥은 공간 구성이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통건축미를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건물의 구성을 보면 외부에 개방된 바깥마당에 사랑채가 위치하고, 사랑채 뒤편에 조그만 새 마당을 설정하고 안쪽에 담을 만들었으며, 대문간이 따로 없이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서 문짝을 단 대문인 일각문이 설치되어 있다. 안채의 평면구조는 전체적으로 (T)자형을 이루며, 사랑채는 팔작지붕의 건물로 (一)자형 평면 구성이다.

이 가옥의 특징은 안채 뒷마당의 출입을 윗방이나 부엌을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하여 여성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점과, 사랑채를 가리는 시설 없이 높은 축대 위에 당당하게 세운 점을 들 수 있다. 특별히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점은 다른 건물들과 구별되는 특징적인 점이다. 이 건물은 마을의 맨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위치적인 면이나, 규모면에서 다른 마을의 건물들을 압도하고 있어 당대의 세도가 집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가옥은 1984년 1월10일 중요민속자료 141호로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

또 하나의 옛집은 원래 `서정우 가옥'으로 불리던 `공산성 고가'이다. 2007년 1월 29일자로 중요민속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이 집은 건축연대가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안채의 상량문을 근거로 1924년에 중수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사랑채는 안채가 중수될 당시에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구성을 보면 (一)자형의 사랑채가 배치되고 사랑채 우측 끝 부분에 행랑채를 덧대어 (ㄱ)자형을 이루고 이곳에 대문을 설치하였으며 안마당에 면해서 (ㄱ)자형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이 가옥의 전체 구성은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 가옥의 특징은 부엌 위로 특별한 구조를 만들어 그곳으로 연기가 빠지도록 까치구멍을 만든 점을 들 수 있다. 아울러 대문간을 사랑채 뒤의 측면으로 낸 점과 사랑채를 한쪽을 초가지붕으로 한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옥은 전체적으로 민가 건축의 소박한 멋을 지니고 있으며 조선 후기 서민들의 경제적, 사회적 성장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라 할 만하다. 가까운 마을에 위치한 김주태 고가와 비교되는 공산정 고가는 김주태 가옥이 일반인들이 감히 접근을 못 하게 하는 권위를 갖고 있다면, 공산정 고가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소박한 아름다움과 친근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궁궐이나 세도가문의 집에서 느끼는 위압감과는 다른 친근함이 음성의 옛집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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