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속삭임
별들의 속삭임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7.07.04 1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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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목요일 오후, 톡이 날아왔다. 공중전화 박스를 구했다고. 오래전부터 수소문했으나 이제야 마련했다는 기별이 왔다. 후영리 언니가 보내온 사진에는 빨간 부스에 전화기까지 멀쩡하게 있었다. 나는 톡을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들이 묻는다. “그거 통화도 돼요?” “응 수화기를 들면 20년 전 사람이 대답할지도 몰라. 그래서 20년 전 과거의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어.” 아들은 내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며 웃었다. 토요일 점심쯤 도착한다고 했다. 세 집이 사서 운반비도 셋으로 나누니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고 들뜬 내게 후영리 언니가 말한다.

금요일 밤,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옆 좌석 남편의 전화가 심한 진동으로 몸을 떨었다. 후영리 언니의 남편이었다. 지금 서울서 싣고 내려오니 바로 오라는. 보던 영화를 접고 괴산으로 갔다. 전화 부스 3개 중 한 개는 먼저 도원리, 두 번 짼 월문리 마지막은 후영리 순으로 배달할 거라 했다. 무게가 120킬로나 되니 각자 집의 남편들과 동네 사람 한 명을 더 불러야 한단다.

드디어 두 번째인 우리 집으로 트럭이 들어왔다. 계단이 높은 집을 보고 사람들은 올라가기 어렵다며 계단 아래 대문 앞에 놓기를 권했다. 나는 해 보지도 않고 힘들다고 나자빠지는 건 대한민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박박 우겼다. 그리고 네 남자를 설득해 간신히 계단을 올라가 마당에 놓았다. 그리고 세 번째 집으로 향했다. 밤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다음 날 들뜬 마음에 공중전화 부스에 갔다. 테이프로 친친 동여맨 부스의 몸체에서 테이프를 떼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전화기가 없었다. 전화기가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전깃줄만 덜렁거렸다. 남편에게 달려가서 전화기가 없다고 하자 남편은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래서 그 부스를 하라고 했구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내게 남편은 말한다. 무심코 왼편의 부스를 내리려고 하자 후영리 언니 남편이 오른편의 부스를 가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난 말했다. “돈 똑같이 낸 거야. 그러면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거 아냐?” 남편은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것을 먼저 챙기는 법이라고. 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살짝 기분이 나빴다. 남편은 말한다. “그거 있음 뭐하게? 전화할라고? 그냥 써. 애초에 그거 살 때부터 난 맘에 안 들었어. 쓰레기 같은 걸 왜 자꾸 사나 몰라.” 어디 전화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화 부스에 전화기가 있어야 구색이 맞을 것 같았다. 후영리 언니에게 톡을 날렸다. “언니 우리 전화기가 없네요. 트럭에 혹시 빠졌나 봐주세요.” 라고. 친친 동여매진 부스에서 전화기가 빠져나갔을 리 만무하지만 서운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후영리 언니는 세 개의 부스에 전화기가 다 있었던 거로 안다면서 찾아본다는 톡을 보내왔다. 전화기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 언니들이 단톡에 자신들의 전화기 부스를 장식해서 찍어 올렸다. 난 장식된 꽃에는 눈이 안가고 전화기에만 눈이 쏠렸다. 잊었던 부화가 치밀었다. 단체 톡방에서 빠져나왔다. 나름대로 소심한 복수인 셈이다. 내 마음을 그녀들은 알라나? 이 치졸한 마음을. 그냥 내가 실수로 단톡방을 빠져나갔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저녁을 먹고 창밖을 보며 반성한다. 소심하게 살지 말자고. 작은 것에 목숨 걸지 말자고. 벽에 걸린 못처럼 하늘에 뾰족하게 나온 별들이 둥글게 살라고 내 가슴을 쿡쿡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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