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가시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7.04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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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낡은 의자의 나무 쪼가리가 내 손을 뚫고 들어갔다. 아이들 앞이라 아프다 소리도 못한다. 손바닥을 보니 가운뎃손가락 마디 안쪽으로 꽤 길게 박혀 있었다. 수업을 끝내고 뺄 요량으로 그냥 두기로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접힐 때마다 통증으로 인해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들어가 가시를 빼려 했지만 깊게 박힌 가시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깊게 박힌 가시는 온종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내 내 가시를 빼려 안간힘을 썼다. 가시를 빼내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드디어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가시가 빠져나온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큰 딸아이가 자신도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있다고 했다.

내가 빼준다고 했더니 아프지 않으니 그냥 두라고 한다. 딸아이는 아프지도 않은데 꼭 빼내야 하냐며 가시를 빼려고 살을 찢는 것이 더 싫다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가시란 것이 어디 어떻게 박히느냐에 따라 고통을 주기도 주지 않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왜 그것이 새롭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사막의 선인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도 크건 작건 가슴속에 누구나 가시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어떤 때는 상대방을 찌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다른 누군가의 가시에 찔려 괴롭기도 하다. 개중에는 스스로 가시에 찔려 아파할 때도 있다. 자신의 말 한마디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줄도 모른다. 그러다 다른 사람의 작은 말 한마디에 아프다며 비명을 지르고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한다.

상대방의 아픔은 자신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만큼도 못하다는 말도 있다. 세상이 각박하다고들 한다. 이웃이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자신들 가족의 행복만 추구하는 사회가 오늘날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물론 가시가 꼭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막의 선인장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으로서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기 위함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살이가 결코 쉽지는 않다. 특히 사람관계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은 없다. 무촌이라는 부부 사이도 예의가 필요하며, 하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상대방에게는 가슴 깊이 박 힐 수 있는 가시가 될 수도 있다.

가시라는 놈의 생리가 오히려 크고 색도 진하면 빼기도 쉽지만 가늘고 색도 연하면 잘 빠지지도 뺄 수도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의 잘못인지 밝힐 수 있는 일이라면 서로 화해를 하고 이해를 하면 된다. 하지만 아주 소소한 문제로 오해가 쌓일 때는 서로 가슴만 끙끙거릴 뿐 푸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가시로 찌르며 산다. 그래 놓고도 늘 다른 사람의 말에 더 아파하며 내 안의 가시를 더욱더 크게 키워 왔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가슴속에 키워온 가시를 하나씩 빼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어떨까. 그래야만 다른 사람을 찌르는 일이 줄어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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