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사로 살아야 하나?
어떤 교사로 살아야 하나?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07.04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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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무서운 대상일까? 존경의 대상일까? 잠시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내가 생각했던 스승의 모습은 어땠는지 돌아보니 그저 어려운 대상이었다. 그래도 조병화 시인의 시를 읊어주던 국어선생님도 있었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로 시작하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를 암송하도록 했던 영어 선생님도 있었다. 영어단어 외우게 하고 수학 문제 풀게 했던 선생님들보다 시를 읊게 한 선생님들을 기억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낭만이 있었던 학창시절을 보낸 듯 싶다.

교사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는 학생들의 기억에 저장된다.

롤모델로 남을 수도 있고, 닮고 싶지 않은 배제 대상으로 남을 수도 있다. 쉽게 말하고 쉽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난달 있었던 일이다. 청주 모 고등학교 교사는 교직원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학생을 때리고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좌변식 화장실에 익숙한 요즘 학생들이 쪼그려 않는 화변기가 불편해 학교에서 볼일을 못 본다는 상황조차 파악하지 않은 채 체벌이 이뤄졌다. 심지어 여자 교직원 화장실을 훔쳐보려고 했던 것 아니냐며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았고, 화장실로 데려가 볼일을 본 휴지를 들어 올리도록 강요하면서 피해 학생은 정신적 충격을 받아 전학을 고려하고 있다. 매를 대고 위에서 군림한다고 교사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음에도 여전히 자행되는 학교 현장의 모습이다.

최근 학창시절 `왕따'를 당해 마음고생을 했던 성균관대 학생이 묵묵히 자신의 옆을 지켜준 선생님의 사연을 페이스북 `성균관대학교 대나무숲'에 게시해 감동을 전했다.

사연인즉 이렇다. 그는 학창시절 이유없이 왕따를 당했다. 지문인식으로 학교 급식을 먹어야 했지만 손에 땀이 많아 지문인식이 잘 안 돼 친구들로부터 심한 놀림을 당했다. 그는 부모에게 도시락을 싸 달라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아이들의 왕따는 지속돼 결국 전학까지 생각했다. 그의 부모는 담임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정년을 앞둔 나이 많은 수학교사였던 담임교사는 쉬는 시간에 그를 불러내 손을 꼭 잡으며 “내가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너희를 너무 방치한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물었고 그는 “이 학교를 떠나고 싶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담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청소를 시켰다. 당시 남들보다 일찍 등교해 책상 위에 놓인 터진 우유와 걸레를 치워야 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책상이 깨끗해짐을 알고 친구들의 장난이 멈춘 줄 알았다. 평소보다 10분 일찍 등교한 어느 날 교실 창문 너머로 뭉클한 장면을 목격했다. 선생님이 물티슈를 들고 그의 책상에 적힌 낙서를 지우고 있었다. 그는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펑펑 울었다. 전학을 가는 대신 그는 학교에 남았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며칠 전 담임선생님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는 그는 “아직도 눈만 감으면 물티슈를 쥐고 있는 그 주름진 손등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글로 남겼다.

왕따를 당했던 학생을 말없이 감싸 안아줬던 교사와의 사연을 읽은 한 대학생은 “만약 내가 열심히 노력해 선생님이 된다면 학생의 아픔까지 감싸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는 글을 남겼다. 이 글에는 응원과 격려를 담은 900개의 댓글이 달렸다.

교사의 사소한 행동은 학생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존경하는 은사님으로 기억될 수도 있고 악몽의 시절을 안겨준 가해자로 기억될 수도 있다. 가르치는 교사가 되기는 쉬워도 가르침을 주는 교사가 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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