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행복
일상의 행복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7.0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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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나는 평범한 여자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한 남자의 아내이기도 하다. 나의 호칭은 안에서는 여보이기도 하면서 수한이 엄마이다. 또한 밖에서는 이름이 쓰여진다. 여자로서 몇 개의 호칭을 갖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아파트의 주인인 나는 집안을 가꾸는 일을 담당하고 농막의 주인인 그이는 밭을 돌보는 일을 맡고 있다. 나보다는 그이가 더 부지런을 요한다. 고추를 심어 제때에 줄을 매야 하고 토마토 순도 자주 잘라주어야 한다. 하나하나 손길이 닿아야만 하는 농막은 게으름을 피우면 금방 표가 난다.

일요일이라 조금 늦잠을 자고 싶은 나는 새를 상대로 궁시렁거린다. 잠도 못자게 훼방을 논다고 칭얼대면 그이의 한마디는 농막의 주인답다. 여기가 산속이니 새들 구역에 내가 침범한 것이어서 시끄러워도 내가 참아야 한다는 이론이다. 언제부턴가 그이는 자연에 적응이 다 된 눈치다.

새들 때문에 잠을 깬 나는 일찍이 아침을 준비한다. 여기에 올 때는 늘 빈손이다. 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사오는 일은 없다. 쌀을 씻어 불려놓고는 채마밭으로 나간다. 한 바퀴 휘 돌아오면 찬거리 준비가 끝난다. 바구니엔 오이도 한 개, 가지도 몇 개, 새싹채소도 담겨있다.

여린 채소를 다듬어 그이가 좋아하는 겉절이를 무친다. 밥상에는 가지와 고추, 호박과 오이도 올라가 있다. 온 밭이 다 올라가 있는 소박한 밥상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이는 내가 해주는 밥을 제일 맛있게 먹어주는 남자다. 나와 가장 많이 밥을 먹어주고 앞으로도 먹어줄 사람이다.

또한 나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반 이상을 등장하는 인물일 것이다. 처음에는 여리고 순한 여인이 나이를 먹으면서 자주 화내고 우악스러운 역할로 변하고 점점 더 극성맞은 여자로 변모해가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슬프면 나도 슬픈, 기쁜 일이 생기면 나누어서 더 기뻤던 인생의 마디마디에 서로가 있었다. 우리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서로의 인생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누구 하나 귀하지 않은 사람도 없다. 가족. 친구. 이웃. 동료 모두가 내 삶이라는 연극무대에 역할을 맡은 조연들이다. 그들이 있어 내가 더 돋보이고 찬란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 혼자서 연기를 잘 한다고 연극이 성공하는 게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역할을 다해 전체가 조화로워야 그 연극은 관객에게 박수를 받는다. 또한 감동을 주는 법이다.

나는 이 밥상에서 한편의 연극을 보게 될 줄이야. 그 연극은 아들을 낳아 정성들여 잘 키워내고 서로를 의지하며 손을 잡고 가는 노부부의 찡한 뒷모습을 엔딩으로 끝이 나고 있었다.

막이 내리자 가슴 안에 아지랑이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이 뜬금없는 뭉클함은 무어지. 아,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행복은 집채만큼 커다란 것이 아닌 아주 작은 모습이었다. 행복이 멀리에 있는 줄 알았다. 형체도 없는 걸 잡으려고 수없이 헤맸던 나는 그때마다 실망하고 좌절하며 원망도 했다. 그러나 정작 여기에, 내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 아침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됨을 오늘 아침 밥상에서 느끼는 것이다.

나의 지금의 이 평화가 내가 그토록 찾던 행복임을 알게 해주는 감사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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