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꿈 이상설’과 연극
거인의 꿈 이상설’과 연극
  • 김기원<편집위원>
  • 승인 2017.07.03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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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김기원<편집위원>

밀실예술(개인예술)을 하는 필자가 공연예술(협업예술)을 하는 연극배우로 깜짝 변신을 해봤다.

여러 무대에서 시 낭송도 했고 노래도 불러봤던 터라 몇 마디 대사만 있는 단역쯤은 연습만하면 거뜬히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오산이었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험로의 연속이었다.

발음·시선·자세·배역들과의 호흡은 물론이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옷 갈아입고 분장하고 제 때에 나가는 것 까지 어느 한 가지도 만만한 게 없었다.

두 달여를 꼬박 연습했는데도 아마추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긴 2~30년 내공을 쌓은 프로배우들도 연출가의 요구수준에 쉬 오르지 못했으니 어찌 아니 그러랴.

한 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소쩍새의 수많은 울음과 천둥번개의 요란한 소용돌이를 감내해야 함을. 연극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예술인지를, 연극 속에 들어가 보고야 알게 되었다.

그랬다. 연출가를 중심으로 작품에 하나로 녹아드는 과정 자체가 감동이자 예술이었다. 그게 바로 연극의 속살이자 민낯이었다.

자신의 분야와 자신이 작품이 최고라는 의식을 갖고 사는 밀실예술가들(문학ㆍ미술 등)에 비해 연극인들은 겸손했고 배려심이 많았다.

선·후배 서열의식이 강했으나 연출가의 작품의도에 모두 순응했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내가 아닌 우리가 되는 그들의 연극사랑과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각설하고 지난 6월 28일 진천화랑관에서 보재 이상설 선생의 생애를 그린 `거인의 꿈 이상설'이 초연되었다.

오후 4시와 7시 30분에 2회 공연을 했는데 무려 1,300여 명의 관람객이 운집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200~300명을 유인하기 어려운 작금의 연극계 현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흥행이 아닐 수 없다.

온 국민들이 한 번쯤은 봤으면 하는 유익한 연극이란 관람객들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어 흥행과 감동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공연이 되었다.

극단 청사(대표 문길곤)가 제작하고 이은희가 연출한 동 연극은 50여 명의 스텝들이 동원된 대작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제작하다보니 관람객을 유인하는 내로라는 유명배우 한 명 없이 100%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과 무용가들과 국악인들로 무대를 꾸몄다,

그럼에도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충북연극계가 쌓아온 탄탄한 내공과 저력 덕분이었고, 고종황제 시종관 역을 한 필자도 묻혀갈 수 있었다.

아무튼 연극은 배우·무대·관객·희곡을 4대 요소로 한다. 그러나 미술·음악·무용·영상 등 인접 예술 분야와 적절히 융복합해야 하고, 무대장치·조명·분장·의상 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고난도 예술장르이다.

이렇듯 많은 구성요소들로 인해 그 미학적 순수성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도 있으나 잡다한 구성요소의 무분별한 집합체가 아닌 총체적인 연관 속에서 생성되고 분출되는 역동적인 종합예술인 것이다.

이번 `거인의 꿈 이상설'이 큰 울림을 준 것도 무용과 국악이 극과 잘 융복합되어 시너지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보재 이상설 선생은 충북 진천이 낳은 위대한 독립운동가요 선각자요 교육자였다. 헤이그 밀사 건으로 일제가 사형선고(이준과 이위종은 무기징역)를 내린 것만 봐도 그가 일제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가 고종황제를 중심으로 국권회복운동을 했고 러시아를 배경으로 활동해온 탓에 한동안 조명 받지 못하거나 저평가 되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터라, 이번 연극 `거인의 꿈 이상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연극은 인생의 모사요, 관습의 거울이요, 진리의 반영이다'라는 키케로의 말과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일 뿐입니다'라는 극 중 대사가 뇌리를 스친다.

하여 연극도, 나라도 탄탄해지기를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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