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목 전투
노루목 전투
  • 김경수<수필가>
  • 승인 2017.07.03 16: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김경수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평소 낯익은 아저씨와 아줌마가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자리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는 아저씨가 나와 장사를 하려고 하면 아줌마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아줌마가 장사하려고 하면 아저씨가 아줌마의 물건을 치워버렸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잠도 자지 않고 포장마차를 펼쳐 놓는가 싶으면 아예 그곳에서 숙식해가며 서로 버텨가며 싸웠다. 흔히 그렇듯이 장사를 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자리다. 즉, 목이란 얘기다. 얼마나 목이 좋으냐에 따라 장사의 성패가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노루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덫을 놓아 사냥했다고 하여 노루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어쨌든 이들이 다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할머니가 이 자리에서 풀빵을 만들어 팔다가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돈이 필요했고 그동안 자리에 공을 들인 것들이 너무 아까워 그냥 툴툴 털고 떠나기가 아쉬웠다고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제법 짭짤한 수입 덕분에 손자와 손녀의 교육비와 살림을 꾸려 갈 수 있었다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그 자리는 큰길에서 골목길로 이어지는 입구로서 많은 사람이 그 길을 지나가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도 있었지만 멀거나 불편한 길이었다. 더구나 그곳에 상점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이런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던 아저씨는 마침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재빠르게 돈을 주고 산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아저씨는 포장마차를 수리하려고 이틀간 장사를 미루었는데 그 사이에 아줌마가 행상을 펼친 것이었다. 아줌마는 남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린 아들과 먹고 살길이 막연하였다. 그러다 몇 날 며칠을 궁리 끝에 그 길목에 행상을 펼친 것이었다.

아저씨는 이 자리는 내가 산 것이니까 아줌마는 여기서 장사를 할 수가 없다고 하자 아줌마는 이 길이 아저씨 것이냐면서 따졌다. 못하게 하는 사람과 해야겠다는 사람의 싸움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어떤 사람은 돈을 주고 산 아저씨의 편을 들었고 어떤 사람은 이 길이 누구의 땅이냐며 아줌마의 편을 들어주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둘이 장사를 하기에는 비좁은 공간이었다. 누구든 감히 남의 생존 싸움에 함부로 해결해 보겠다고 끼어들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나중에 아저씨는 할머니를 모셔와 따져 봤지만 할머니는 모든 계산이 끝난 일이라면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 두 사람의 싸움은 그칠 줄을 모르고 이어 갔다. 결국 어찌 끝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간이 해결한 듯하였다.

약자와 약자가 생존을 놓고 다투는 일이다. 사람들은 길바닥을 놓고 싸우는 이 두 사람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길을 돈 주고 산 아저씨나 돈을 주고 산 자리를 끼어드는 아줌마나 모두 엉터리 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치열하고 절박한 전쟁일 수도 있다.

삶은 어떠한 질서에 의해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의 수많은 마찰이 빚어지고 있음을 쉽게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누구에게는 하찮고 보잘것없는 일들로 보이겠지만 누구에게는 소중하고 중요한 일들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