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밥
이기적인 밥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7.0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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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나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사람들은 아직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갈 번호표를 얻지 못했다. 건물에 들어서면 식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본 문이 또 하나 있는데,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번호표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곳에 있다 다른 식당으로도 갈 수도 있는 사람들이기에 주인은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다른 식당으로 갈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지금 시각이 오후 두 시가 넘어 확률로 봐서는 식당 안으로 들어갈 사람이 많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밥을 먹고 나서 삼삼오오 손을 잡고 나오는 사람들, take out한 봉지까지 들고나가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하다. 인정도 넘쳐 줄 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까지 옅은 미소를 보낸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기 위한 예비 단계로 엑스레이로 불편한 부위를 훑는 의사처럼 대놓고 문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훑고는 식당에서 빠져나간다.

벽기둥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기다린 지 벌써 이십여 분이 지났다. 오래 서 있었더니 발도 저리다. 배에서 쪼르륵 거리는 소리가 날만도 하다. 다른 식당으로 옮겨갈까? 옆에 서 있는 사람들도 나와 같이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하느라 수런대는 소리가 난다. 한 여자가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남자의 요구에 떠밀려 밖으로 나간다.

밥 먹는 순서가 당겨지긴 했어도 여전히 앞에는 대기 손님들로 넘쳐난다. 끼니를 때우고 나서 자리를 비워주고 나오는 사람들과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도 여러 무리가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식탁을 차지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저렇게 긴 줄 뒤에 서서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줄이 언제 줄어들지 몰라 조바심이 났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저 사람들은 언제 밥을 먹고 갈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다. 조금 전 내게 금방 자리가 날 것이라며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던 중년의 남자처럼 나도 그렇게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마음의 양식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을 비방하지 말고 헐뜯지 말고 살라고. 자신의 소유물조차도 남을 위해 내놓는 나눔을 실천하라고. 그렇지만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 시선은 어느새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는 사냥꾼의 화살촉처럼 식탁으로 향한다. 사냥꾼의 품에서 떠난 화살촉이 들짐승의 엉덩이로 향할 때처럼 내 눈도 순식간에 국그릇에 꽂힌다.

국물이 참으로 맑다. 깔끔하다. 국밥에서 나는 특유의 잡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때를 넘긴 시간이라 그러기도 하지만 국물의 뜨거움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삼킨다. 쩝쩝거리며 먹는다. 먹는다기보다 입에 퍼 넣는다는 말이 이 상황에는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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