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 김홍숙<문화해설사 · 소설가>
  • 승인 2017.07.0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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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김홍숙

소설 임꺽정은 1928.11.21 쓰기 시작하여 1939.7.4일자로 중단된 벽초 홍명희의 미완의 작품 소설이다. 벽초는 1927년 오산학교 교장을 사임하게 되는데 오산학교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민족교육의 명문으로 많은 독립의 인재들을 양성한 학교였다.

벽초 선생이 중국에 갔을 때 상하이 도착 후 동지들을 따라서 [동제사]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고 한다. 동제사는 동주공제 라는 명칭대로 동포 간의 상호부조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국권회복을 목표로 한 독립운동 단체로서 후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 모체가 되었다. 또 하나 신간회까지 거론하고 임꺽정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벽초는 민족협동전선 신간회가 결성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조직부 총무 간사로 활동하게 되는데 신간회 민중대회 사건으로 투옥되어 임꺽정 연재를 중단하게 된다.

3년 후 가출옥으로 연재를 재개하나 3년 후 병으로 소설을 중단, 다시 2년 후 연재를 재개하다 다시 2년 후 중단한다. 1939.7월 조선일보사에서 임꺽정을 4권으로 간행한다.

경기도 양주로 이주하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조광지로 옮겨 임꺽정 소설을 재개하지만 단 1회 재개 후 영구히 중단되었다.

소설 임꺽정은 조선 중기의 봉건적인 모순 속에서 노비, 평민 등 각 계층의 삶과 갈등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 천민 백정의 아들 임꺽정을 통하여 민중들의 애환과 분노를 살아있게 서술한 작품이다. 벽초는 소설 임꺽정을 어록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시작할 때에 임꺽정만은 사건, 인물, 묘사 모두 남에게서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 조선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다”라고. 뿐만 아니라 이극로 선생은 “임꺽정은 깨끗한 조선말 어휘의 노다지가 쏟아지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고하였으며 월탄 박종화 선생은 “임꺽정에는 조선 사람이라면 잊어버릴 수 없는 구수한 조선냄새가 배어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소설 임꺽정은 조선 하층 민중의 삶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민족 공동체의 아름다운 전통을 적극 재현함으로써 민족 문학적 색채가 농후한 역사소설이 되었다.

소설 임꺽정은 명종조에 당대 사회의 국기를 흔들 만큼 큰 사건이었던 [임꺽정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연산군의 갑자사화로부터 명종 대까지 50년간의 시대 상황을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소설 임꺽정은

* 봉단편 -연산군 때의 홍문관 교리 이장곤의 신분 하락과 복권의 과정을 다룬 것(1권)

*양반편 -중종조에서 명종조 까지의 사화로 얼룩진 시대상과 사대부 계층의 생활상을 다룬 피장편(2권)

* 의형제편 -임꺽정을 비롯한 청석골 두령들이 청석골로 입산하는 과정(4.5.6권)

*화적편 -청석골 패의 활동상황과 관군의 도포 및 그에 따른 몰락의 과정을 묘사한 것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7.8.9.10권)

소설 임꺽정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신바람이 넘쳐난다, 그 시절에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쓰다니, 읽을수록 재미가 배가 되는, 허허허허 하고 여유 있는 웃음, 진정 조선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라고 독자와 작가들은 이구동성이다.

역사 소설은 사실을 중시하는 역사와 허구를 근본성질로 하는 문학이 서로 결합하는 독특한 장르이다.

일제는 1930년대 중반부터 침략 전쟁기로 들어서면서 우리의 언어와 문자, 이름과 성까지도 말살하게 된다. 우리의 역사 소설은 이때부터 쓰여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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