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를 청소하며
세탁기를 청소하며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7.06.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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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냈다. 거뭇거뭇한 얼룩들이 옷가지 여기저기에 묻어 있다. 분명 색깔 옷과 흰옷을 구분해서 세탁했는데 혹시 실수로 검은색 옷가지가 끼어들어 가 물이 빠졌나 세탁물을 뒤적거려 보았다. 검은색 옷가지는 보이지 않는다. 의아해 손끝으로 문질러보니 끈적거리는 느낌이 세재 찌꺼기인 것 같기도, 물때 같기도 한 것이 영 개운치가 않다. 빨래를 도로 세탁기에 집어넣고 헹굼을 해서 꺼내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야에 물을 받아 헹궈보았다. 물에 떠다니는 검은 찌꺼기들이 엄청나다. 가끔 뜨거운 물로 세탁기를 청소한다고 했음에도 시원치 않았나 보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알아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넣고 미지근한 물을 가득 받아 불린 후 세탁기를 열어보았다. 맙소사! 검은 부유물들이 가관이다. 겉으로는 꽤 깨끗한 모습이었는데 아무래도 세탁조 보이지 않는 안쪽에 찌든 때들이 떨어져 나온 모양이다.

세탁기의 숨겨진 때를 청소하면서 나는 이상하리만큼 떨쳐낼 수 없는 생각에 휘둘렸다. 외양은 번드르르하지만 속은 도통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깨끗하고 정직한 것 같지만 내면에는 이기심과 탐욕스런 마음이 찌든 때처럼 찌들어 있다. 그럼에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마치 진실인양 스스로도 착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 일게다. 세탁기속의 찌든 때처럼 이기심과 탐욕이 수면위로 떠올라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거나 실망시키는 부류들이다. 그 탐욕은 자신도 모르게 쌓이기도 했겠지만 알면서도 혹시나 자신의 것을 잃어버릴까 외면했을 것이다.

날마다 세재와 살균제를 넣고 빨래를 돌리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 그렇게 찌든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으리라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깨끗하게 빨아 뽀송뽀송 말린 옷가지처럼 혹은 반짝거리는 스텐레스로 된 세탁조처럼 겉모습만 깨끗하면 그 모습이 진짜인 양 착각하며 살아갈 터였다. 나 역시도 마음의 때를 어느 한구석에 쌓아놓고 있을 것이 분명할 터, 그 마음의 때를 생각하니 심란하다.

그런데 요즘 인사청문회를 한다고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높으신 양반들의 모습도 내 눈에는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인다. “당신들은 속속들이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살아왔습니까? 당신들이 검증하겠다고 들이대는 잣대를 본인 스스로에게 들여대 본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나는 상상으로 그들에게 묻고 또 묻는다.

평범한 사람인 내 눈에는 그들의 모습은 아무런 명분도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려고 국회에 입성한 것으로 보이며 국민을 위해 협치 할 마음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은 곤혹스러움을 떠나 세탁기 속의 검은 부유물처럼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AI와 불경기 탓인지 가게매출도 반 토막이 난 지 이미 오래고 이래저래 뒤숭숭하고 심기 불편한 날들이다. 오랜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대지에 속 시원하게 단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심기 불편하고 속 타는 내 마음도 덩달아 해갈이 되어 평온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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