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창백한 푸른 점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6.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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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미국의 천문학자이자 미국항공우주국의 우주개발에 중심 역할을 한 칼 세이건이 쓴 책의 이름이다.

제주도 올레 길을 걸어보면 제주도가 작은 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가 작다고 하지만 여행을 해 본 사람은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가 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지구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인간에게 지구는 우주나 다름없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이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했다.

미국의 항공우주국이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를 보낸 것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계의 행성들, 나아가 저 먼 우주의 모습을 알기 위함이었다. 1990년 2월 초, 미국항공우주국은 보이저 1호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이 명령에 따라 보이저 1호의 카메라는 방향을 돌려 지구를 찍었다.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찍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지구를 향하여 카메라를 돌리려고 한 그 생각은 위대한 일이다.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가는 일이 그냥 우주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구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말은 칼 세이건이 가지고 있는 지구와 지구의 생명에 대한 지극한 애정의 표현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은 강한 자로 보일까, 아니면 약한 자로 보일까? 큰 자로 보일까, 아니면 작은 자로 보일까? 안심이 되는 존재일까,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일까? 지구와 지구의 생명을 바라보는 칼 세이건의 심정은 바로 이러한 부모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광대한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한 개의 작은 점이다. 이 거대한 지구가 작은 점이라니! 지구와 달 사이에서 아폴로 17호가 찍은 사진을 보면 지구는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대륙과 바다가 얼룩처럼 보이는 큰 공의 모습이다. 하지만 보이저 1호가 태양계 외곽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지구는 수많은 별 사이에 찾기도 어려운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리고 태양계를 벗어나 더 멀리 가면 지구는 보이지도 않는, 정말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존재가 되고 만다. 이렇게 지구는 우주에서 정말 작은 존재다. 그런데 지구를 작은 점이라고 표현하는 그 속마음은 존재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지구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생명이 존재하는 푸른 점이다. 아직도 우주의 어디에 다른 생명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주에 다른 생명이 있건 없건 지구의 생명은 소중한 존재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우주에 다른 생명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지구의 생명은 그 생명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의 생명은 이 우주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이고 소중한 존재다.

왜 창백한 푸는 점일까? 창백하다는 이 말이야말로 칼 세이건의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창백하다는 말은 연약하다는 의미가 있다. 연약하기 때문에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지구의 장구한 역사를 돌아볼 때, 생명이 잉태한 것은 기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종이, 일부는 자연적으로, 일부는 인간으로 인해서 멸종되었던가! 지구는 푸르기는 하지만 짙은 푸름이 아닌 창백한 푸름, 강한 푸름이 아닌 연약한 푸름인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그 장구한 인류 역사 거의 전부를 소모한 후에야 지구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가까이 있다고 잘 아는 것이 아니다. 멀리서 보아야 더 잘 보이는 것도 있고 헤어져 보아야 더 잘 아는 것도 있다. 우주 탐험? 그것은 우주가 아니라 바로 지구 탐험이다. 지구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를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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