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윤 동 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맑은 언어의 옹달샘을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행간을 타고 청량한 바람이 몰려왔다 쓸쓸히 돌아가기도 합니다. 자화(自畵).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자신의 머리에서 심장을 따라 발에 닿는 길이라고 합니다. 가까우면서도 참으로 멀고 먼 길이 나와 만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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