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깊은 집(2)
마당 깊은 집(2)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6.27 1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시골길을 돌아보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야트막한 담장 안을 깨금발 들어 마당 기웃거려본다. 한낮의 볕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게 꾹꾹 내려앉고, 연신 부쳐대는 부채바람도 후끈후끈 열기만 인다. 마당 돗자리위에는 구둑구둑 말라가는 나물을 갈퀴로 뒤적이는 아낙의 손놀림이 분주해 보인다. 모자 해가림천이 등까지 내려오는 창 넓은 모자이지만 언뜻 언뜻 보이는 검게 그을린 얼굴,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내며 갈퀴질 하는 아낙은 어림잡아 중년을 막 넘긴 듯하다.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빛에 반사된 손때 묻은 갈퀴자루는 번들번들 광나고 있었다. 부챗살처럼 활짝 편 갈퀴는 아낙의 손길 따라 푸른빛을 잃어가며 나물은 검푸르게 변해 잘도 뒤척여진다. 활짝 열어진 한쪽대문, 세월의 흐름 속에 조금씩 아주 느리게 퇴색된 대문은 아낙과 함께 긴 시간 속을 달리고 있었나보다. 거의 사용한 흔적조차도 없는걸 보면 아예 대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어디 상상이나 할법한 일이던가.

무한과학시대 아니 우주시대라고 하나 현관 잠금도 열쇠에서 버튼으로 이젠 지문감지시스템으로 진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현관 앞 감시카메라설치는 기본이다. ‘띵동’ “누구세요”라 묻고 답하는 차가운 세상, 그래도 약간은 정이 묻어나는 풍경이었건만 그나마 그것도 이제 과거 속으로 묻히고 이젠 이름도 어려운 도어뷰어(door viewer) 화면으로 방문자를 확인한다. 혹여나 안면이 없거나 귀찮은 존재이다 싶으면 대답조차도 않고 무시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아이들의 목에 열쇠를 걸고 다니는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이미지가 자동으로 촬영하여 저장까지 하는 차세대 도어뷰어(door viewer)가 요즘 인기절정이다. 뿐만 아니라 집안까지 카메라가 쉴 사이 없이 돌아가고 있는 세상이다. 주름 깊게 파인 기성세대들도 첨단시설에 익숙해지면서 열쇠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세상임에도, 왠지 따스한 정이 없는 삭막한 과학의 힘은 감탄보다도 사막에 서있는 냥 마음한쪽이 서걱거린다.

스마트한 세상, 대형아파트로 이사한 동료는 애완견 때문에 스마트 홈 카메라를 설치하는 중이란다. 집안 구석구석을 화상은 물론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여러 가족이 스마트폰으로 동시에 집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집들이 초대를 받은 우린 누군가 우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왠지 모를 어색함이 감돈다. 가볍게 뒷담화도 즐기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감시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린 정색을 하는 행동으로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었다.

안전시대인지 사각지대인지 모를 아늑한 골목길은 물론 심지어 실내까지 CC TV가 나를 감시하는 것인지 지켜주는 것인지 모를 세상,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현실, 첨단과학의 힘 앞에 딜레마에 빠진 우리다.

갈수록 점점 흉흉해지는 사회, 맞벌이 부모들은 집안 보안 겸 아이들 보호 때문에 보안네트워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편리하고 안전함보다는 어찌 불편한 마음이 앞서는 건 또 어떤 연유일까. 디지털시대로 달려가면서 점점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난 구식이라기보다는 촌스럽기 그지없다. 아니 아날로그에 빠져드는 열정의 마니아가 되어가고 있다. 점점 높아지는 담, 높이만큼 온정이 높아지면 좋으련만 담에 부딪친 믿음과 정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외려 불신의 담은 높아지고 있는 씁쓸한 현실이다.

대문조차 활짝 열어두고 지내는 이곳, 중천에 떠 있던 해도 처마 끝에 그림자를 그려놓고 있다. 아낙의 짧았던 그림자도 점점 길게 그려지면서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내 그림자도 쉬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연서하나, 유년시절 내 어머니도 저 아낙처럼 저렇게 나물을 말리셨다. 청춘이 바람처럼 멀리 달아나 이젠 중년으로 갈아타야 할 세월 속에 있음에도 이토록 절절한 건 아낙 뒤태에 내 어머니가 포개지고 있었다. 시간이 머무는 마당 깊은 집, 또 하나의 그리움이 내리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