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룰렛
중국식 룰렛
  • 하은아<증평도서관 사서>
  • 승인 2017.06.2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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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날이 뜨겁다. 7월이 오기 전인데 벌써 폭염에 시달린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고 결국엔 에어컨의 힘을 빌린다. 그럼에도 얼굴이 확확 타오르는 듯한 더위는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마음에 한기가 찾아오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가 사라진다. 날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온전히 마음의 변화에 따라 더위가 급습하기도 하고 냉랭해지기도 한다. 이런 일상은 누구나 겪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누구도 마냥 행복하지도, 마냥 긍정적이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럴 때가 있으면 이럴 때가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일 것이다.

그때는 다 큰 어른이라 생각하던 20대에 나는 익명성에 매료되어 있었다. 타인이 지나치게 간섭하는 삶이 버거웠고, 나에 대해 누군가가 알아보는 것조차 피곤해 했다. 각자 알아서 살면 되는데 SNS를 통해 누군가의 생활을 엿보면서 나 자신과 끝없이 비교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초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동경하고 꿈꿨다.

그때 나에게 도움이 됐던 것은 은희경 작가의 소설이었다. 그녀는 주로 타인의 시선에서 격리되어 살고자 하는 인물을 소재로 글을 썼다. 그렇게 사는 삶이 내가 추구하는 삶인 것 같았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혼란스럽고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지던 20대를 버텨냈다.

이제 40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으며 내 주변으로부터 너무 독립되어 있지도 않고 두루두루 관계를 해내가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다. 더 이상 완전한 익명의 삶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런 지금 은희경의 작가의 `중국식 룰렛'은 조금 다르게 와 닿는다.

이 책은 6개의 짧은 단편 소설을 담고 있다. 소설마다 하나의 모티브가 되는 사물들이 있다. 술, 옷, 신발, 사진, 가방 등 그것이 모티브가 되어 익명의 삶이 그려진다. 인물들은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 않다. 누군가는 K이고 누군가는 J이다. 주로 그와 그녀가 있는 소설들이다. 주어진 질문에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이상한 규칙을 세우고 술 먹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행운과 불운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공항에서 가방이 바뀌고 다시 주인을 찾는 이야기가 우연한 상황을 통해서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듯 그려진다.

소설 전반에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삶에 대하여 우연이라는 것을 가장하여 이야기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그러하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우연한 행운에 행복해하고 다가올 불운에 불안해하는 삶을 누구나 산다. 신은 그런 삶을 비웃듯 행운과 불운을 꼭 교차하며 주지 않는다. 불연속적으로 행운을 연달아 주기도 하고 불운을 연달아 주기도 하는 삶을 선물이라 하며 준다. 이 책 속의 삶이 그러하듯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우리는 살아간다. 작가는 그런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 내가 사는 삶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에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를 향해 묵묵히 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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