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의 자녀들
벽초 홍명희의 자녀들
  • 김홍숙<문화해설사 · 소설가>
  • 승인 2017.06.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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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김홍숙

벽초 홍명희의 자녀는 장남 홍기문과 차남 홍기무, 기하와 쌍둥이 딸로 홍수경과 홍무경 그리고 계경이 있다. 차남 홍기무는 1910년생으로 정인보 선생의 사위가 되었으나 일찍 세상을 떴다고 한다. 기하도 돌을 지나 사망했으며 쌍둥이 딸들은 일제 말 이화여대 전문부를 졸업했으며 한학자인 부친 벽초 홍명희가 두 딸을 지도하여 저술을 권장하였다고 한다.

이능화의 저서 [조선 여속고]를 권하며 참고하라고 하자 딸들은 [조선의복·혼인제도의 연구]라는 제목으로 졸업논문을 공저로 출판한다(을유문화사) 이 논문은 아주 잘 쓴 글로 유명하며 전통 생활사 분야의 선구적인 업적이라고 한다.

장남 홍기문(1903~1992)은 호는 대산이며 국학자로 성장하였으며 부친과 마찬가지로 민족운동과 언론 활동을 전개했다. 국어학, 국문학, 국사학 분야에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다.

3.1운동을 거치면서 뚜렷한 민족의식을 갖게 된 홍기문은 민족을 일깨우는 방법으로 국어를 연구하게 된다.

그는 벽초의 서가에서 주시경의 [말의 소리], 김두봉의 [조선말본]등과 일본어로 된 [언어학 이론서]를 찾아 읽으며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

1932년 말 조선일보사에서 학예부장과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어학 관련 기사와 논문을 많이 실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심화하면서 그의 내면적 갈등도 커졌다.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조선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았고 이에 국어학 관련 논문을 많이 발표했다. 1940년 조선일보가 폐간되자 은거생활을 하며 학문에 몰두한다.

해방 후 [정음발달사], [조선문법연구], [향가해석], [리두연구]등과 같은 국어학사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치열한 연구 활동 덕분이다.

월북 이후에는 사회과학원부원장을 맡아 [박지원 작품 선집]을 국역했으며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된 [이조실록] 번역작업을 총괄 지휘했다.

조부 일완 홍범식의 유언을 평생 잊지 않고 `민족의 언어, 민족의 역사'를 탐구하게 하는 국학자의 길로 이끌었다고 본다고 강영주 교수는 말한다. 홍기문은 첫 부인에서 1남 3녀를 두고 신여성 사회주의 운동가 심은숙에서 4남 1녀(홍석중)를 두었다. 국어연구가이자 신간회, 카프에 참여하며 사회운동을 벌인 홍기문은 시대적 요구와 학문을 일치시키려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홍명희 일가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 지성사의 변천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고 본다.

홍석중 (1941~)은 홍기문의 아들로서 서울에서 출생했다.

해방 후 부친과 북으로 가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으며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활동했다. 저서 [소설 황진이]는 남한에서 출간된 북한 소설로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소설 황진이는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소설적 서사와 야사, 속담과 살아있는 비유를 풍성하게 구사했다'는 심사위원들의 평을 받았다.

조부로부터 이어받은 학문과 문학의 전통이 `황진이'의 소설적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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