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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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기<여가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7.06.2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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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 김현기

최근에 가장 많이 회자하는 말은 `내로남불'인 것 같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쏟아낸 언론과 정치인들의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라는 존재는 `나에 대한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내 기억의 총합과 그에 대한 생각이 지금의 나일 것이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기억이 매우 정확하다고 생각하며 그를 바탕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이렇게 우리 삶의 모든 것에 기준이 되는 것이 우리의 `기억'이다. 그런데 내 기억은 정말 정확하고 객관적인 것일까?

1990년대 초 심리학자인 대니얼 캐니만과 도널드 레델마이어 교수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대장 내시경 검사는 환자들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의사들은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연구의 목적은 고통을 더 주더라도 검사를 빨리 마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고통을 적게 주면서 시간을 더 길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사람들에게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1분 간격으로 통증의 수준을 0에서 10까지 수준으로 보고하게 했으며 검사가 끝난 뒤 `전체적인 통증수준'을 같은 방법으로 평가해 달라고 했다. A그룹 환자들의 내시경 검사는 8분 동안 지속하였고 가장 크게 경험한 통증 수준은` 8'마지막 순간의 통증은 `7'검사가 끝난 뒤 전체적인 통증 수준은 `7.5'라고 보고했다. B그룹 환자의 검사는 24분 동안 지속하였는데 가장 높은 통증 수준은 `8' 마지막 순간의 통증은 `1' 검사 후 전체적인 통증 수준은 `4.5'로 보고했다.

B그룹의 환자들은 A그룹에 비해 검사시간이 세배 더 오래 걸렸고 고통의 총합이 훨씬 더 컸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통증 수준은 더 낮게 보고했다. 환자들은 경험의 합계를 내지 않고 경험의 평균을 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음번에 다시 검사를 받기를 희망하는 환자들은 검사시간이 길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낮은 통증을 경험한 B그룹 환자들이었다. 이것을 정점-결말 법칙이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해서 기억한다는 것이다.

기억은 불확실하다. 자신의 관점과 필요에 따라 같은 경험을 다르게 이야기한다. 내가 말하는 과거는 내가 만들어낸 머릿속 이야기다. `내로남불'은 이런 기억왜곡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기억을 만들고 공유해야 할 것인가? 이왕 지어내는 기억이라면 `내불남로'가 되면 안 될까? `내가 하면 불륜이고 남이 하면 로맨스'라는 역지사지의 심정, 소통과 공감의 마음이 정말 필요한 때이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회는 아픈 기억으로부터 좋은 것들을 찾아낸다. 위대한 국민은 `상처'를 `희망'이라는 새 기억으로 만들어 냈다. 이제 정치인들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야만 한다. 관행이라는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쌓인 적폐의 옛 기억을 새로운 기억으로 다시 만들어야만 한다. 새롭게 태어나는 그들이 정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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