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별곡
부부 별곡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7.06.2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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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걸음을 멈춘다. 병실 앞에서 환자의 이름을 확인한다. 익숙한 풍경이라 머뭇거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환자는 출입문 옆에 한자리를 차치하고 있다. 모든 기운을 소진한 초라한 모습이다. 이모부의 커다란 손을 잡자 눈물이 났다.

이모는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로 생활 한지 17년째다. 이모부는 단 하루도 환자를 가족이나 타인에게 부탁한 적 없이 씻기고 입히며 당신은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굶어도 삼시세끼와 오전, 오후, 간식 챙겨 먹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투병생활이 길어지면 환자보다는 간병해야 하는 가족들이 먼저 지치기 마련인데 아내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버티며 투정도 받아주고 다독였다. 그러나 이젠 몸이 무너지고 있다. 영양실조가 오더니 혈관이 막히고 마비되어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 무엇으로 막을 수 있는가. 부부의 끈을 잡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모부는 병원에, 이모는 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노부부는 삶의 정점에 다다르면서 병고로 인해 미리 이별을 경험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또는 스스로 선택한다. 시부모가 그랬고 친정아버지가 그랬다. 이번엔 이모 내외가 아린 이별을 준비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시부모님께서는 7년째 병원생활을 하신다. 시어머니께서 초기치매증상을 보일 때, 두 분을 내 집으로 모셔 와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불편하다며 집으로 가시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버님이 조금만 수고하시면 집에서 돌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으나 당신께서 힘든 건 못 견뎌 하셨다. 서둘러 노인 병원으로 보낸 건 아버님이셨다. 2년 후, 아버님마저 병원에 입원했다. 두 분이 각기 다른 병원에 계시니 거동이 조금이라도 나은 아버님을 모시고 시어머니를 뵈러 가곤 한다. 그러나 이젠 아버님마저 이동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사별에 앞선 이별이다.

친정아버지는 말기암으로 떠나시면서 이별을 경험하지 않으셨다. 유한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며 치료를 거부하고 남은 시간을 집에서 지내셨다. 당신의 흔적을 정리하고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엄마 손을 꼭 잡고 계셨다. 엄마는 낮이고 밤이고 불을 켜놓고 아버지와 마주 보고 누워 있었다. 자식들이 곁을 지키니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는 깜박 잠이 들어 손을 놓게 되면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곤 했다. 혹여 떠나시는 걸 못 볼까 봐서란다. 부부의 사랑은 말기암의 고통도 잦아들게 하나보다. 아내 곁에서 큰 고통 없이 깔끔한 모습으로 가셨다. 나는 시부모와 친정부모, 그리고 이모 부부의 삶을 지켜보면서 부부의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사랑 없는 부부라면 책임감도, 그 사람을 위한 희생도 없이 오로지 의무감만 있을 터이니 빠른 이별에도 외롭지 않고 덤덤할까. 노부부의 길에 정답은 없겠지만, 사랑한다면 나는 친정아버지가 선택한 길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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