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라는 폭력
이름이라는 폭력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6.2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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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태정태세문단세, 빨주노초파남보,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초등학교 때 달달 외우던 이름들. 기억맹인 나 같은 인간에게도 이 나이가 되도록 기억하는 이름들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당하는 폭력이 아마도 이름이 아닐까?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이 정해지고, 자기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이름이 평생 자기를 대변하고, 규정하고, 제한하는 이런 폭력이 어디 있을까? 이름뿐이 아니다. 언어 자체가 사물에 가하는 인간의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다, 더럽다, 크다, 작다 등 언어 자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이다. 이 허구인 관념으로 사물을 규정해 버리니 언어가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름 짓는 일이다. 개나 고양이도 자기 새끼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을까? 그들이 나무나 풀에도 이름을 붙일까? 그들이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새끼를 사랑하지 않는가? 풀을 뜯지 못하는가, 나무에 오르지 못하는가? 하지만 인간은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인다. 마치 이름이 없이는 부를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고, 생각조차 할 수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름을 붙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그 이상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인간에게 이름이 없는 존재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다. 이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고 그래서 인간은 이 우주에서 가장 폭력적인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태양계의 행성 이름이다. 그런데 2006년, 천문학자들은 여기 `명'에 해당하는 명왕성을 태양계의 행성에서 퇴출시켜 버렸다. 명왕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없어도 이런 어처구치 없는 일이 또 있을까? 누가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나, 행성의 반열에 넣어 달라고 했나? 저들이 이름 짓고, 행성이라 규정했다가 저들이 이제 와서 행성이 아니라고 퇴출시키고. 이 무슨 웃기는 일이란 말인가?

인간들도 할 말은 있다. 명왕성을 행성에 포함했었지만 명왕성보다 더 멀리 명왕성보다 더 큰 천체가 발견되었고, 앞으로 자꾸 발견될 가능성이 남아 있고, 그렇게 되면 행성의 숫자가 얼마나 늘어나야 할지 모를 일이고. 그래서 이참에 분명하게 행성 가족의 수를 제한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명왕성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다. 참 아름다운 시로 보이지만 실은 엄청난 폭력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존재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름이 있고 없고, 이름이 불리고 안 불리고가 왜 중요하단 말인가?

이름은 그 이름의 주인과는 전혀 무관하다. 하지만 일단 이름이 붙여지고 나면 이제는 이름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

장미는 장미라는 이름과는 전혀 무관한 존재다. 하지만 일단 장미라는 이름이 붙은 후에는 장미가 되고 만다. 장미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길이 없다. 장미라는 이름은 장미에게 속박이고, 억압이고, 폭력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로 끝내자니 자꾸만 `명'이 내 입속을 간질인다. 뭔가 뒤를 닦지 않은 듯 불편하다. 이 불편함의 본질도 내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이름에 대한 강박관념, 이름이라는 폭력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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