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덫
인연의 덫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6.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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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수필가>

인연 중에 부부로 만나는 일은 자식과 부모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든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연은 좋은 만남일 수도 나쁜 만남일 수도 있다.

불교에서 인연은 직접적인 원인으로서의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으로서의 연(緣)을 구별한다.

즉 나무를 전체의 인연으로 본다면, 인은 나무의 씨앗이고, 연은 씨앗을 키운 햇빛·공기·수분·온도라는 것이다. 때문에 인연이란 노력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부부의 인연 또한 서로의 노력으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관계가 악화하고 이혼을 하거나 서로 증오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해혼, 졸혼, 휴혼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회자하고 있는 부부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해혼은 자녀들이 출가하면 부부가 권리와 의무는 덜어버리고 한집에 살면서 사이좋게 사는 인도의 풍습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37살에 해혼식을 올리고 수행 길에 나섰다고 한다. 졸혼이 `결혼 졸업'이라면 휴혼(休婚)은 `결혼 휴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해혼, 졸혼, 휴혼은 이름만 다를 뿐 부부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려는 지혜라는 점에서 방식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결혼기간 동안 가족 부양을 하느라고 힘들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일정기간 휴식기간을 갖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사생활을 즐기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부부의 모습들이 급증하는 이혼을 막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누구의 남편,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당당히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제2의 인생길을 여는 일은 가슴 떨리는 일이 되리라 본다. 어느 날, 당연히 있어야 할 배우자의 부재는 어쩌면 다시 한 번 욕망의 대상으로 재인식하게 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며, 이러한 휴지기를 가짐으로써 서로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소중한 과정도 체험하게 되리라 믿는다.

우리 부부도 어느새 결혼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간다. 세상의 바다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견뎌왔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어느 결혼식장이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부부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죽음이 서로 갈라놓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라는 말은 주례사의 단골 메시지였다.

하지만 헌신적인 부부의 사랑이 과거에는 `필수'였다면 지금은 `될 수 있으면'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현실이다.

연인들에게 `사랑'이라는 말이 조건 없이 서로를 `욕망'하게 만드는 말이라면, 부부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서로에 대한 `헌신'이 전제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에게도 `사랑'이라는 말은 그리 쉬운 말은 아니다. 남편은 꼭 말로 해야 아느냐고 한다. 하지만 여자는 말로 해야 안다고 대꾸하는 내 속엔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뎌지고 익숙해 진지 오래다. 더불어 포기도 쉬워졌다. 그래서일까. 해혼, 졸혼이라는 말이 과연 우리에게도 가능한 일인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세상은 이렇듯 가치관도 모습도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산골짝 돌개울의 여울 바닥에 바짝 엎드린 작은 자갈돌처럼 버거운 세월만 탓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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