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것과 포옹하는 것
바라보는 것과 포옹하는 것
  • 박재명<충북도 동물보호팀장>
  • 승인 2017.06.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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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박재명<충북도 동물보호팀장>

6,70년대엔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가난한 농촌에서 성장하였다. 빈농이었지만 공직에 계시던 아버지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는 그나마 좀 나은 형편으로 자랐다. 그리고 나도 아버지처럼 공직자가 되었다. 대졸 초임 월급이 40만원인 시대에 15만원을 주던 공직에 멋모르고 입문한 지 벌써 30년을 훌쩍 넘어 정년을 바라보고 있다.

되돌아보면 공직문화가 참 많이 바뀌었다. 입문 초기에는 이른바 갑의 위치에서 일했다. 처음 입사하여 업체에 출장 가면 종사원들은 일렬로 세우고 점호처럼 위생 검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젖소를 키우는 농장에 가면 불결한 위생용구를 발로 지적하며 단속했던 광경은 놀라운 초임 시절의 모습이었다.

하기야 학창시절부터 `사랑의 매'라는 미명하에 선배들과 선생님께 얼마나 많이 맞으며 성장했던가. 현역 병사들에게나 행하던 원산폭격, 김밥 말이 같은 단체 기합도 거의 매일 받았다. 하물며 일반 사회에서는 그런 병영 문화가 더 많이 남아있었기에 가능했지 않았나 싶다.

그랬던 공직자의 위치가 갑에서 을로, 을에서 병으로 낮아지고 있다. 지금은 국민과 대등함을 넘어 섬기는 위치에 있다. 이런 변화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도청을 찾는 외빈의 의전은 항상 도민이 앞섰다. 길거리에서 1인 시위하는 어느 도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표창도 수여자의 권위가 아니라 도민에게 영광을 돌리는 모습은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었다.

그간 정부가 변해야 할 차례였음은 이미 오래전이었지만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한 달여 동안 감동할 일들이 참 많아졌다. 늙은 수훈자를 부축하고, 영접하고, 시민보다 높이를 낮추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한 발짝 다가선 것을 넘어 포옹으로 공경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놀랍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다. 사람마다 흘리는 눈물에 담긴 의미는 무수히 많은 것. 그러나 요즘은 권위에 눌려 흘려야 했던 눈물이 감동으로 변하여 그 화학적 성분을 달리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말로만 듣던 나라의 주인이 바로 나였음을 비로소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수년간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가 겨울마다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작년 11월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의 악몽으로 도내 관계 공무원들과 유관기관의 직원들은 수개월째 쉬지 못하고 있다. 발생할 때마다 까다로워지는 방역조치와 새로 마련되는 제도로 농가도 더 힘겨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발생한 지 7개월이 되어도 지금껏 사육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고, 치열했던 방역과정에 생긴 농가와의 앙금은 아직도 목젖에 걸려 있다. 그만큼 공무원도 농가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고 있다. 농가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 주어야 하는지, 난제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다. 30년 공무원의 노하우도 지금의 상황 앞에서 한계를 느낄 뿐이다.

그간 물질적 장려와 규제만 생각했을 뿐, 열린 마음으로 포옹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어려움에 필요한 것은 물질적 원상회복보다 마음의 상처를 살피는 일이 먼저임을 보았다. 넘쳐나는 물자의 풍요로움으로 과거보다 당연히 행복해야 하겠지만, 정작 마음이 가난한 것은 왜일까? 지금의 사정을 살펴보니 다가섬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잡아주는 손길, 나아가 포옹하는 것이 소통의 근간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공무원을 지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새내기부터, 공직 생활이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포옹하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주어진 공직생활은 점점 더 속도를 내며 줄어들고 있다. 깨달을 즈음이면 하차를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우리 삶의 모습과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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