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교육정책 실험 이젠 그만
정치권, 교육정책 실험 이젠 그만
  • 김금란 부장(취재3팀)
  • 승인 2017.06.20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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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정치인의 입맛에 맞춰 교육정책이 놀아난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30년간 유지해 온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명 일제고사) 시험이 폐지됐다.

20일 치러진 2017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전국 중학교 3학년, 고 2학년 학생 93만5059명의 3%인 표집대상 학교 474개교 2만8000명만 시험을 봤다. 충북에서는 184개 학교 가운데 표집대상인 중 8, 고등학교 7교 등 15개교에서만 시험이 시행됐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의 의견과 과열 경쟁을 해소하겠다며 지난 14일 일제고사 폐지를 발표했다.

이날은 시·도교육청에 시험지가 배부된 날이다. 교육청 직원들은 시험지를 실은 차량을 보며 일제고사 폐지 소식을 듣다 보니 어떻게 시험지를 폐기할지를 걱정했다. 학교에서는 몇 개월 전 시험감독으로 섭외한 학부모들에게 취소 통보를 했다.

시험을 1주일 앞두고 폐지를 발표한 이유가 뭘까?

2017 학업성취도 평가 계획은 지난해 이미 수립됐다. 시험지 90만장 인쇄와 성적 처리에 드는 예산 200억원이 정산된 상황에서 폐지 발표를 시험이 끝난 다음날 했어도 된다. 학생부 기록에 남는 것도 아니니 예정대로 시험은 시행하되 성적은 발표하지 않으면 된다.

청와대나 정치권이 국민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안이 발생하면 으레 연예인 스캔들이 터졌다. 이번에도 혹시.

시험 폐지 방침을 발표한 시점이 하필이면 새 정부가 내정한 주요 장관 후보자의 사생활이 민낯을 드러내 임명 강행 이야기가 오르내리던 때였다. 국민의 여론을 잠재울 방패가 또 한 번 필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제고사 방식의 성취도 평가 폐지가 아쉬운 점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걸러낼 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에서 고학년인데도 한글이나 사칙연산을 모르는 아이들이 꽤 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대부분이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원이나 과외는 엄두도 못 낸다.

몇 해 전 한 중학교에서 만난 교사는 정규수업 시간이 끝나면 한글을 읽지 못하는 제자를 위해 한글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 교사도 설마 했단다. 당시 그 교사는 “한글조차 읽지 못하는 데 중학교를 진학한 것은 교사들이 직무유기를 한 것 아니냐”며 “같은 교사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충북의 경우 중·고 학생의 기초학력미달 비율은 지난해 1.495%였다. 지난해에는 2.215%로 증가했다. 세상은 좋아졌는데 기초학력미달 비율은 오히려 늘었다. 학교 간 경쟁을 부추겼다는 비난은 받았지만 그래도 일제고사가 제도권 안에서 학업이 뒤처진 아이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교총이 성명서를 통해 교육을 위해 제도가 존재해야 하는 데 제도를 위해 교육을 이용하는 비교육적 행태로 비난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학부모 반발을 불러온 특수목적고(외국어고, 국제고, 자율형사립고)의 일괄적 일반고 전환을 시작으로 사립대학 공영화 등 앞으로 추진될 교육정책은 산더미다. 무조건 없애고 보자는 생각은 교육을 통제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안 미셸 비영리 민간기구 스웨덴여성교육협회 한국지부 회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좋은 대학이라는 똑같은 목표를 향해 모두가 돌진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가 낯설다”며 “스웨덴 사람들은 `남에게 그럴 듯해 보이는 일'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다”고. 스웨덴의 대학 진학률은 40% 안팎. 60%의 학생들이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도 만족해하는 이유부터 고민한다면 정치에서 벗어난 교육정책을 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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