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이 가득한 책장
레몬이 가득한 책장
  • 이헌경<진천여중 사서교사>
  • 승인 2017.06.19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헌경

학교도서관에 신간 도서를 구입하고 장서인을 찍을 때면 만족스러움과 뿌듯함이 차오른다. 책장에 새 책이 채워진다는 만족감과 나란히 자리한 모습에서 벌써 다 읽은 것 같은 착각의 뿌듯함. 그리고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새 책을 가장 먼저 읽고 싶다는 생각에 한껏 욕심을 부려 대출부터 한다. 그것도 한가득.

한가득 고른 책 중에서 점점 더워지는 6월에 제격인 표지를 가진 책이 있다. 도서 `레몬이 가득한 책장'(조 코터릴 지음·이보미 옮김·라임). 아침 독서 운동 포스터에 나올 법한 일러스트와 산뜻한 색상의 표지, 단어부터 상큼한 제목은 지나간 오월의 싱그러움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이야기는 상큼에서 끝나지 않았다. 동화 같은 두 소녀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진지하고 마음 아파지더니 따뜻하고 나는 어떤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표지 속의 두 소녀 칼립소와 메이는 빨강 머리 앤과 다이애나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갈수록 서로의 집안 풍경이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면의 힘'을 강조한 아빠로 인해 책 읽고 상상을 하며 혼자만의 세상을 채워가던 칼립소는 개구쟁이 동생의 소동과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음식이 있는 메이의 집이 자기도 모르게 점점 좋아졌다. 그것도 잠시, `레몬'을 주제로 책을 쓰던 아빠의 원고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자 아빠도 칼립소도 그동안 꾹꾹 참아 왔던 슬픔과 외로움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혼자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괜찮음은 불안과 외로움이 함께하는 온전하지 않은 괜찮음이었음을 칼립소와 아빠는 알게 된 것이다.

칼립소가 메이와 친해지면서 `참 많이 변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나를 믿어주고 함께 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찾아가며, 그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 속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그들과 어우러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 누군가가 나와 절대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같은 길을 걸어가지 않더라도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끼는 우리는 `人'이니깐.

`혼밥', `혼족', `나홀로 여행' 등 혼자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혼자 먹는 밥보다 여럿이 함께 먹는 밥이 더 맛있고, 혼자 사는 것보다 자리싸움 해 가면 함께 자는 것이 더 든든하고, 혼자 하는 여행보다 노래 불러가며 함께 즐기는 여행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더불어', `함께', `같이'의 가치가 현재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지금도 교실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손등이며 공책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한 소녀에게 칼립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혼자라도 괜찮아요….' 그 뒤에 숨겨진 말을 누군가에게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