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읽기
빈자리 읽기
  • 이영숙<시인>
  • 승인 2017.06.1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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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

공조팝처럼 퍼지는 하얀 그리움, 삶의 무게에 눌린 지친 욕망이 다리 끝에 매달려 절룩거리면 칼국숫집으로 향한다. 지긋한 노인의 얼굴에서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내고 구수한 칼국수 양푼에서 고향들 가득한 추억을 훑는다. 칼국수 한 그릇에 어머니를 들여놓고 고향 집을 들여오면 온몸 가득 안개처럼 피어나는 온기, 하늘 가득 어머니가 퍼진다.

어머니라는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 힘들고 고단할 때 긴장 풀고 찾아가는 만만한 품이다. 우리 영혼의 탯줄은 고향을 품은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의 아이디는 고향이며 생물학적인 연결 너머 정신의 지주이며 존재의 근원이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고 부모는 자식의 원망을 들으면서 늙는다는데 이제는 그 원망을 받아줄 부모 없는 고아가 됐다. 올봄 주말농장을 시작하면서 더 크게 다가오는 어머니의 빈자리, 가뭄으로 잘 자라지 못하는 상추와 고추, 비실거리는 호박 때문에 가슴이 탄다. 물만 주면 잘 자랄 텐데 잎이 누렇게 뜨면서 크질 못한다.

어머니도 그랬을까. 대학 가겠다고 밤늦도록 공부하는 딸내미의 방 앞에서 긴 그림자를 드리우시다 두꺼비집을 내리실 때의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결혼하여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연히 방송국과 인연이 닿아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공부의 중요성을 느껴서 만학을 하였다. 띠동갑 나는 학우들과 학문을 겨루느라 하루 25시의 삶을 살았고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면서 대학원 학위까지 취득했다. 어머니는 딸내미가 내미는 `중등 국어 정교사 자격증'과 두툼한 논문집을 받으면서 뼈가 운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조선 중기 대표적인 여류 시인 허난설헌이 조선의 여자로 태어난 것을 비통하던 것처럼 여자라는 이유로 꿈을 접어야 했던 당시의 보편적 가치와 그 가난을 원망했던 날들이 있었다. 당시 주말 연속극으로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던 `아들과 딸'의 남매 쌍둥이 중, 아들 귀남 역의 최수종과 딸 후남 역의 김희애가 열연한 드라마가 있었다. 우리 집도 교통사고로 누워계신 아버지 대신에 대가족의 가장 역할을 하시던 어머니에게 아들은 남편을 대신할 희망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자식의 재주를 꺾는” 것이라는 철없는 소리로 어머니 가슴에 쇠를 박던 그 불효를 어찌 면할까? 긴 세월 원망을 품고 살면서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인근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제 새끼를 품을 수 없어 저리 슬피 우는지, 오늘따라 구슬프게 들린다. 석 달 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동일시돼 오랫동안 귀 기울인다. 이 세상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어머니가 사시던 고향 집 화단엔 주인의 손이 멈춘 가시오가피나무만이 무성한 그늘을 만들고 주인 잃은 세간은 점점 빛을 잃어 간다. 어머니를 잃고서야 어머니의 그 자리가 큰 자리였음을 느낀다. 어머니는 존재의 근원이고 숨이다.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이 끊긴 지금부터는 자가 호흡하며 삶을 살아내야 한다.

“뻐꾹~ 뻐꾹~”

뻐꾸기 소리가 마치도 저승에서 자식을 품지 못해 우는 어머니의 울음 같다. 이제는 호박 숭숭 썰어 양푼 가득 담아내던 어머니표 손맛을 어디에서 찾을까. 애호박이 담을 타고 시골 인심처럼 둥글어지면 가마솥 가득 구수하게 퍼지던 칼국수, 어머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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