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의 기도
비 내리는 날의 기도
  • 임형묵<수필가>
  • 승인 2017.06.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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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임형묵

이앙기나 콤바인이 들어갈 수 없는, 쟁기로 논 갈고 하늘 물 받아서 농사짓는 천수답이라면 모를까, 논이 멀쩡한데 비가 내리지 않아 모내기하지 못하는 논도 적지 않다. 밭골에서는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도 먼지만 풀풀 쏟아낸다. 충주호 저수량도 적정량의 30% 정도밖에 차지 않아 바닥을 드러낼 정도라 하고, 일기예보를 들어도 속 후련하게 비 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

수확기에 든 감자는 그 크기가 새알만 하고 가지는 곧게 뻗지 못해 제 몸에 닿을 정도로 휘어져 있다. 배춧잎은 누렇게 뜨고 상추와 쑥갓 잎도 물기가 없어 배배 틀어진다. 내다 팔 농작물은 제때 물먹음이 없어 상품 값어치가 떨어져 울상을 짓는다. 축산농가도 조사료 생산량이 적어 외국에서 수입해 쓸 지경이라고 하니 온 나라가 물 걱정이다.

빗물은 잠자는 생명을 깨운다. 물기를 보관해 놓았다가 새싹을 내밀게 하고 잎을 돋우며 줄기를 뻗어 올리게 한다. 비는 언제 내릴까? 비가 온다 해도 흡족하게 내리기나 할까? 가뭄이 들 때마다 농민의 가슴은 소태가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도 다가가지 못해 애태우는 연인처럼 농민들은 하늘 바라기가 된다. 이성선(1941~2001) 시인은 그의 시 `천수답'에서 천수답엔 밤마다 큰 별이 내려와 잠들고, 하늘의 눈물이 벼를 기른다고 했다. 농부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는 것도 비라고 했다.

농민들은 척박한 땅이라 해도 저버리지 않는다. 올해 가뭄으로 인해 설령 농사를 망친다 해도 농민들은 땅을 갈아엎지 않는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농사를 망쳤다 하더라도 품고 간다. 물론 부를 창출하려 농사를 짓지만, 그렇다고 돈만 생각하고 농토를 가꾸는 것은 아니다. 한 톨의 식량이라도 더 얻으려고 몸부림치다가도 소출이 적으면 다음해에 더 거두면 되지 하고 땅에 감사하고 산다. 못난 자식이든 잘난 자식이든 부모가 품고 가듯 자연의 혜택에 고마워하고 슬픔과 기쁨도 땅과 함께한다.

비를 맞고 싶다.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비를 맞고 싶다. 빗물이 머리카락에 닿아 몸을 타고 흐르고 발끝까지 흘러내려도 고스란히 비를 맞고 싶다. 그 자리에서 빗물의 감촉을 느끼고 빗물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 비가 주는 언어를 전해 듣고 비가 던지는 아픔을 더듬고 싶다. 온 대지를 빗물로 적셔 촉촉해지면 저 들판으로 달려가 벼 포기를 부여잡고 물을 빨아 먹는 식사에 초대받고 싶다.

왠지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온 대지가 촉촉이 적어 있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저녁을 맞는다. 오늘 밤 지나가기 전에 들판의 작물들이 목마름 떨쳐 버리고 긴 호흡하는 노랫소리를 기대한다. 빗물이 창을 두드려 잠에서 깬다 해도 그 선율에 몸 맡기며 대지에서 번져오는 흙냄새를 마냥 들이켜는 시간을 상상한다. 농민에게 비는 눈물이다. 가슴 저 밑바닥을 촉촉이 적시는 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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