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과 대들보
기둥과 대들보
  • 박숙희<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7.06.18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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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박숙희

정유년 6월,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직지」상권 마흔세 번째 이야기는 약산 유엄선사(藥山 唯儼 禪師)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약산이 어느 날 앉아 있을 때 석두가 보시고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여기에 있어서 무엇을 하느냐?” 석두가 말씀하시기를 “이러 한즉슨 한가히 앉아 있구나.” 약산이 말하기를 “만약에 한가히 앉아 있다고 한다면 곧 하는 것이 됩니다.” 석두가 말씀하시기를 “네게 하지 않는다고 말하니 또 무엇을 하지 않느냐?” 약산이 말하기를 “천명의 성인도 또한 알지 못합니다” 석두가 게송으로 칭찬해 말씀하였다.

종래로 함께 있어도 이름도 몰랐더니/ 걸림 없이 간직하여 이렇게 수행하는구나. 자고로 성현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섣부른 범부들이 어찌 쉽게 밝히랴?

석두 희천 선사가 약산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답을 했다. 그 말에 석두가 반박하면서 “한가히 앉아서 좌선하고 있는데 어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느냐?″고 하셨다.

약산 스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니까 석두 선사가 대관절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하지 않는다고 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마음이 막힌 사람 같으면 거기에 대해서 답을 못할 수도 있지 아니한가.

약산 스님은 대답을 잘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것은 천명의 성인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석두가 그 말을 듣고 약산의 공부가 대단히 깊은 것을 칭찬하시면서 게송을 읊었다.

옛 부처가 나기 전에/ 응연(凝然)히 한 모양이 둥글더라/ 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든/ 가섭이 어찌 전해 받겠는가?

`자고로 성현도 오히려 그 도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앞에서 약산 스님이 `천명의 성인도 또한 알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겠다. 성현도 모르는 그 자리가 바로 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한다는 자리이겠다.

“자고로 성현도 오히려 그 도리를 알지 못한다” 처럼 문 대통령이 청와대 특수 활동비를 축소하겠다고 하자 총무비서관이 “청와대에서 전세 산다고 생각하시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세 사는 사람이 지켜야 할 규칙이 무엇이겠는가? 남의 집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기둥과 대들보를 바꾸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지. 잘못 건드린 사드 문제는 자칫 대들보를 흔드는 상황으로 갈지도 모르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극단적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 직의 수장(首長)이 될 수 있겠는지. 이 또한 기둥과 대들보를 바꾸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대중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지라도, 문 대통령은 내각 출범의 시급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다. 야당시절의 눈으로 지금의 인사 논란을 다시 볼 필요성이 있지 않겠는지. 특히 지금의 인사 난맥이 빚은 국정 파행은 야당의 발목 잡기를 탓하기에 앞서 문 대통령의 무한 책임이겠다. 담대한 탕평과 협치 카드로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 냈어야 했다.

새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출범해야 할 필요성 또한 절박했을 것이다. 생사(生死) 문제인 경제와 안보 위기에 주관적으로 대응하는 것만큼 위태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세입자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집을 소중하고 사려 깊게 쓰는 것. 이는 곧 탕평과 협치로 정책 실패의 위험성을 줄이는, 민주적 권위를 바라는 시대적 요청과도 부합하는 것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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