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읽는 상반된 방식
민심을 읽는 상반된 방식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6.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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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문재인 대통령은 “검증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라고 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국민 눈높이에서 이미 검증을 통과했다”고 했다. 여당은 야당의 반대를 `민심을 거스른 발목 잡기'로 규정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고위직 인사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등에 업고 한 발언들이다. 실제로 야당의 집요한 청문 공세에도 대통령 지지율은 고공행진이다. 80%를 넘는 역대급 지지율이 취임 이후 요지부동이다. 인사 파동 와중에 지지율이 더 오른 조사 결과도 나왔다. 엊그제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문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83%로, 1주일 전보다 1%포인트 상승했다. 야당이 퇴짜를 놓고 있는 후보들에 대한 개별 평가도 후하다. 어제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 대한 찬반 격차도 더블 스코어에 가까웠다. 민심을 앞세운 청와대 반박을 독선과 불통으로만 몰아붙이기 어려운 이유다. 민의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라고는 하지만, 야당의 온당한 비판까지도 여론을 방패 삼아 비켜가며 직진만 하는 청와대의 모습은 왠지 불안해 보인다. 여론우선주의가 섣불리 공약했다가 호된 대가를 치르고 있는 5대 인사배제 원칙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대통령 의지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았던 5대 기준에서 지금까지 청와대가 내세운 인물 중 자유로운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통령도 내심 혀를 찼을지 모르겠다. 이런 탁한 기류에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는 예정됐던 사고로 봐야 한다. 대체로 인내심이 약하고 지조도 부족한 것이 여론이라는 생물의 특성이다. 돌풍과 풍랑이 배를 뒤집듯 하루아침에 돌변하기도 한다. 여론에 반하는 정책이 공익에 더 기여하고, 여론의 환호를 받던 정책이 비극적 포퓰리즘으로 끝나기도 한다. 여론이 협치에 우선한다는 청와대 원칙은 언젠가는 자신을 스스로 얽어맬 부메랑이 될 공산이 높다는 말이다.

여론 엄수를 내세우는 여당과 달리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이 민심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전대미문의 참패를 당한 지난 대선에서도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지속하는 것을 놓고 당 대변인은 `상식적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북한 김정은 체제에 비교하며 색깔론을 지폈다. 서울시당 위원장이라는 사람은 공개된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육두문자를 날렸다. 여론에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현실이 서운하기는 하겠지만 이런 자살골 수준의 대처 방식으로는 민심을 되돌리기 어렵다. 오히려 대통령과 여당의 고공행진에 부채질하는 이적행위에 다름아니다. `상식적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방칟방조함으로써 국민을 좌절케 하고 현 정권이 압승을 거두며 출범토록 한 장본인이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다. 국민이 새 정권에 절대적이고 절박한 지지를 보내게 한 당사자들이다. 뼈를 깎는 자성과 근신도 모자랄 판에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민심까지 비아냥거리고 있으니 있던 정도 떨어질 판이다.

정우택 원내대표의 판단이 그나마 이성적이다. 그는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그 국민적 기대감에 계속 엇박자를 놓는 것이 어떤 득실을 가져올지 따져 볼 일이다. 어제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야당과 정면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야당이 사전 경고한 대로 청문회 보이콧과 김이수 헌재소장 인준 부결, 추경안 거부 등의 대응 수순을 밟아나갈지 주목된다. 강 장관의 흠결이 상식선을 넘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론이 임명으로 기운 것은 한미 정상회담 등 긴급한 현안을 앞세운 청와대의 호소가 설득력을 발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강 장관에 대한 찬성이 아니라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출발한 새 정부가 소신껏 일하도록 일단 판부터 깔아주자는 배려의 의미가 크다. 야당이 새 정부에 기회를 주고 결과를 지켜본 후 매를 들더라도 들자는 민의에 호응하는 방식이 전면전만은 아닐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도 여론조사 결과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지지 이유를 물은 한 조사에서 과반인 50.7%가 `국민과 소통을 잘해서'라고 답했다. 두 번째가 23.2%로 `정책 추진력이 좋아서'였고 `인사를 잘해서 지지한다'는 응답은 17.1%에 그쳤다. 인사 문제에서는 대놓고 당당할 처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더 낮고 진지한 자세로 경색된 정국을 풀어나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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