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노조는 시대정신이다
경찰 노조는 시대정신이다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7.06.1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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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정부가 경찰에 인권침해 방지책을 주문했다. 점철된 검찰의 적폐를 도려내고 수사권 일부를 경찰에 넘겨 견제와 균형을 맞추려는 마당에 이를 운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살피겠다는 것이다. 정권이 몇 번 바뀌었지만 경찰 수사권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빈 약속일뿐이었다. 통제장치 없는 거대 조직에 수사권을 주면 시민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반대 논리 앞에서 경찰은 제대로 맥을 추지 못했다. 수사의 궁극이 범인 검거와 공소유지에서 인권보장으로 바뀌는 추세지만 경찰의 인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럼 경찰 내부 인권은 잘 지켜지고 있는가. 집에서 사랑 받고 자란 자식이 밖에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내부 인권에 익숙한 경찰이 시민의 인권도 잘 지키겠지만 아직은 불안하다. 계급이 깡패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내부의 권위주의는 도저하다. 인권보장에 방해가 되는 권위주의를 걷어내야 하건만 경찰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수사권 이양의 계기가 된 검찰의 적폐도 `검사 동일체 원칙'이라는 권위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경찰은 명심해야 한다.

경찰 내부엔 수사권 반대 목소리도 꽤 있다. 이들은 징계권 남용이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상황에서 수사권마저 생기면 권위주의가 더욱 공고해진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불합리한 정책과 관행을 꾸준히 비판하던 인천청의 A모 경장이 얼마 전 석연찮은 이유로 파면 당했다. 최근엔 중앙경찰학교의 부적절한 관행을 지적한 B모 경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경찰의 권위주의에 맞서다 파면 등의 중징계를 받거나 불이익을 당한 경찰관 수는 적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경찰에도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나 청탁 등의 방해 요소를 수사 담당자의 의지와 양심에만 맡기는 건 한계가 있으므로 노조를 통해 이를 견제하고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만연해 있는 권위주의를 몰아내고 징계권 남용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다. 노조를 인권침해의 통제 장치로 활용하는 한편 조직을 민주적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생각이다. OECD 국가 대부분이 경찰에 노조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도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 겨울, 1700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면서 집회 시위 문화가 한층 성숙해졌지만 정작 경찰은 시위대를 향한 물대포 직사 방침을 고수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살수차에서 참수리차로 이름만 살짝 바꾸는 걸 보면 아직도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한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수사를 직접 담당하게 될 일선 경찰관들의 생각도 잘 살펴야 한다. 인권침해 방지책으로 무엇을 내놓을지 모르지만 김 순경, 이 경사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내부에서 동의하지 않는 정책으로는 정부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의 동의도 이끌어낼 수 없다.

돌이킬수록 안타깝기만 한 세월호 사건. 배가 완전히 기울어 물속에 잠기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한 해경 123정이 승객은 구조하지 않고 청와대 지시를 따르느라 골든타임을 다 허비했다. 해경이 청와대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인명구조가 먼저라고 외치지 않은 건 권위주의에 맞설 소신이 없고 그럴 만한 분위기도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드 콤플렉스에 갇혀 노조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노조는 경찰이 권위주의에 맞서 소신껏 수사하고 인권도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경찰 노조 또한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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