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 권진원<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7.06.1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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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권진원<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며칠 전 해외선교 중이신 수녀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 7년째 파푸아뉴기니에서 병자를 돌보고 계시는데 휴가차 3년 만에 한국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의 뜨거운 햇볕은 수녀님 얼굴을 검게 그을려 놓아서 현지인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한국이 아닌 외국에 나가 있는 것도 존경스러운데 열악한 환경인 오지에 계시다고 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예전에 정글을 가는 방송 프로에서 파푸아뉴기니는 정글 중의 정글, 진짜 정글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태평양 섬나라로 70년대까지 호주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인구는 700만 명에 1인당 GDP가 2000불밖에 되지 않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호주를 통해 문명이 들어와서 전기와 통신, 전자제품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기반시설의 부족으로 사용에 제한이 많다고 했습니다.

섬이 600개가 넘으니 문명의 이기를 서방이나 우리처럼 자유롭게 누리는 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적도 근처에 있어서 고온다습의 열대성 기후를 지니고 있기에 환경적으로 매우 열악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처음에 저는 그곳의 상황들을 들으면서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 수 있지? 전기도 휴대폰도 인터넷도 안 되는 곳, 교통과 통신, 의료 등 현대사회의 편리를 누릴 수 없는 곳에서 불편에서 어떻게 살지?”

다른 섬에 가기 위해 보트를 탔지만 연료가 떨어져서 3~4일을 부두에서 기다리는 일도 있고 작은 통통배를 타고 몇 시간 바다를 건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등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하는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그런 불편에도 사람들은 좀처럼 화를 내거나 불만을 품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버스가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택배가 하루만 늦게 도착해도 노발대발 화를 내거나 불만을 표시하기 일쑤인데 며칠씩 아무렇지도 않게 기다린다고 하니 참 대단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이 다반사이고 화를 낸다고 해결된다고 생각지 않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바쁜 일상에 치여 일분일초를 아껴 써야 하는 우리네들에게는 부러운 이야기입니다. 문명의 혜택으로 먼 거리를 가깝게 가게 되었다면 그 절약된 시간만큼 더 여유 있어야 하는데 더 각박한 모습을 보니 무엇인가 뒤바뀐 기분입니다.

문명의 이기들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때론 편안하고 윤택하며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때론 기계와 정보에 치이고 시간에 치이고 사람과 일에 치여 소중한 것들을 망각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번쩍이는 네온사인 아래에서 밤을 낮처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태양이 주는 고마움은 줄어들고 보름달이 비추는 달빛이 얼마나 아름답고 환한지를 까맣게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많은 것을 누리고 살지만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살지도 모릅니다.

현대문명과 기술에 너무 익숙해져서 도저히 그것 없이 살 수 없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삶은 더 각박해지고 여유가 없으며 세상 것에 치여 사는 우리에게 아직도 원시적 삶으로 조금은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삶의 여유와 멋은 그들에게 더 있어 보이는 것은 저만의 착각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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