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30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6월 항쟁 30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 안태희 취재2팀장(부국장)
  • 승인 2017.06.14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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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안태희 취재2팀장(부국장)

1987년 6월 항쟁이 한창일 때 나는 그때도 기자였다. 대학신문기자로 연세대를 찾아 봉쇄된 교문을 뚫고 대학 안으로 들어가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들의 시위를 취재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청주에 도착했을 때였다. 옛 사직동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불심검문에 걸렸다.

카메라 필름이 10통 정도 든 작은 가방이 전경의 손에 열렸고, `지금까지 잘 버텼는데, 청주 와서 잡혀가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이 전경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슬그머니 가방을 돌려주더니 그냥 가라고 했다. 그 이름 모를 내 나이 또래의 전경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30년이 지났다. 그 당시 선배들과 동료들은 묵묵히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교수가 된 선배도 있고, 교직자의 길을 걷는 친구,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 정치인이 된 형님, 공무원이 된 지인, 귀농한 분들도 있다.

청주와 서울의 길거리에서 최루탄보다 훨씬 센 `지랄탄'을 맛본 민주화운동 대학생들이 어느새 50대가 되어 지역사회의 중추가 되어 있다.

정권이 바뀌었고, 6.10항쟁 기념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등 시대상황도 급변했다. 청주에서 열린 기념식에도 왕년의 민주투사들의 얼굴이 많이 보였다고 한다.

해직교사였던 도종환 국회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로 청문회에 나왔고, 폭압적인 정권의 탄압을 뚫고자 헌신했던 사람들도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럴수록 30년 전의 오늘보다 지금이 과연 더 나은지 자문해볼 일이 남아 있다고 본다. 정치적으로 상황이 바뀐 것 말고, 모든 계층에서 생존의 벼랑 끝을 경험하고 있는 수많은 국민의 처지를 직시해야 하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그리고 민주항쟁의 결실 중 하나는 지방자치의 완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을 위한 역할도 남아 있을 것이다.

지방분권도 결국 그 길에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교육 자치의 이념이 현실화되는 게 평등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인간다운 삶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항상 이상은 현실과 평행한가 보다. 지방자치를 향해 함께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충북도가 지방의원 `쌈짓돈'으로 불리는 재량사업비를 우회 편성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지방의원들에게 배정되어온 재량사업비는 이른바 지방의원들이 쓰고자 하는 사업에만 쓰이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의회 달래기용으로 배분되는 국민의 혈세다.

그렇기 때문에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의회에는 줘서도 안 되고, 받아서도 안 되는 `독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최근에 충북도가 재량사업비를 다시 편성한 것은 구태의연할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를 우습게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의 완성과 지방분권의 강화, 중앙정치의 예속화 탈출 등을 요구하는 지역 정치인들이 아는 듯, 모르는 듯, 눙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국민의 세금을 탐내고 있다니 소름끼칠 일이 아니겠는가.

각종 특위를 구성할 때는 그렇게 으르렁거리던 도의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나올지, 우리의 새로운 30년 잣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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