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간판이 부르는 소리
낡은 간판이 부르는 소리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6.13 2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꽃바람이 고요를 흔들어 깨운다. 툭 휘어진 난 이파리마냥 잘록한 허리를 감싸고도는 부드러운 바람이 부메랑처럼 골목을 휘감아 슬그머니 분진과 오체투지 된 꽃잎들을 목욕탕 계단 아래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흑백영화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동네목욕탕이 경기불황으로 조만간 마지막 영업종료 후 리모텔링하여 가을부터 새롭게 재탄생한단다.

골목언저리 비딱하게 서 있는 빛바래고 낡은 삼각입간판, 손 글씨로 쓴 낡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여탕, 남탕 삐뚤삐뚤한 글씨가 안내하는 그곳. 식당, 편의점, 백화점 등 모든 것이 대형화 추세지만, 허름한 단골식당에 가면 벽에 낙서판이 있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처럼 이곳은 사랑방 같은 곳이다.

대형 찜질방에 밀려 주택가의 소규모의 목욕탕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곳에는 사람의 냄새, 정이 묻어나는 곳이다. 아직도 탈의실 한쪽 구석에 엉덩이 불룩한 TV와 세월의 흔적을 껴안은 허름한 싱크대가 있고, 단골손님에게 라면이나 김밥 그리고 양푼에 비빔밥을 나눠 먹는 곳이다. 조금 지저분해도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거나 투정하지 않고 이웃끼리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고 안부를 묻는 사랑방이다.

예전에 특별한 날 부모님 손잡고 행사처럼 가던 목욕탕, 시꺼먼 자장면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당연 시골아이들에겐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 많았던 목욕, 점차 기억도 사라져 이젠 영화나 사진 속에 자리 잡으려 한다. 어쩌다 골목 언저리에 낡고 볼품없는 입간판이라도 보이면 호들갑을 떨며 귀한 보물찾기라도 한 것처럼 셔터를 눌러대고 sns에 올리기 바쁜 현대인들이다. 어쩜 손바닥 안에서 온 세상을 클릭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지는 젊은이들에게 오색 네온 간판 속에 낡은 간판이 신기한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 빠르게 달려가는 문명 앞에 휴먼다큐가 그리운 기성세대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풍경들 이제는 특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니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만 같다.

세상이 바뀌고 목욕문화도 세월과 발맞추어 대중탕, 독탕과 찜질방으로 발전하면서 참으로 편리한 생활로 변환되었다. 곳곳에 들어선 찜질방은 24시간 목욕은 물론 마사지, 게임, 식당, 할인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모여 공생하며 성업하고 있다. 우리 조상은 옛날부터 아궁이, 온돌, 황토방, 모래찜, 한증막 등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으로 각종 질병을 지혜롭게 치료할 줄 알았다. 특히 아궁이에 장작불은 부인과 질환에 더 할 수 없는 치료였다. 언제부터인가 슬로시티가 유행하고 유기농이다 황토 흙이다 앞다투어 옛것을 선호하면서 찜질방도 조상의 지혜를 접목하여 효소찜질, 장작불찜질 등 다양한 이벤트가 바쁜 현대인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서양 건축물 구조의 찜질방, 럭셔리하고 예술 같은 건축양식 낭만의 파라다이스다. 유리알처럼 매끈한 대리석바닥, 테마가 있는 인테리어는 물론 온갖 첨단시스템은 터치한 번으로 해결된다. 그럼에도 머리가 허여지면서 고향을 찾고 신개발보다 재래식에 마음이 가고 현대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과거를 외면할 수 없는 건, 새 옷, 새 구두가 있음에도 굳이 낡은 구두와 오래된 옷을 입는 이유, 과거와 현재가 그리고 자연과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존재 같은 맥락일 게다.

아직도 예스럽게 명맥을 이어가던 목욕탕, 흐릿해져 가는 담배연기처럼 이젠 시간의 흐름을 인식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자리 그곳에서 슬로모션처럼 아주 느리게 정지되어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하는 풍경 하나가 가슴속에 또 하나 자리 잡는다. 인생의 마침표는 없다 다만 쉼표가 있는 것처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