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공간 - 손끝의 호흡
일상공간 - 손끝의 호흡
  • 안승현<청주공예비엔날레 팀장>
  • 승인 2017.06.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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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자외선 지수가 높다. 도시의 아스팔트와 시멘트벽이 품어내는 열기와 연신 불어나오는 에어컨 실외기의 바람이 불쾌지수를 높인다. 얼음을 한 움큼 집어 큰 유리컵에 넣고 더치커피를 넣어 쭈욱 들이키고 싶은 날씨다.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내 손에는 지난 주말공예장터에서 구입한 연잎차가 들려 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반에서 다관을 내리고 잔을 꺼내고 연잎이 담긴 차호에 차시를 들이댄다. 더운 날씨에 웬 수선을 떠는지 원. 참 유별나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에 탕관에 물을 얹는다. 탕관은 분청사기로 만들어진 화로에 놓이고 탕관 주구에서는 열을 머금은 김이 공기 중으로 튀어 오른다. 분청사기 잔에 기울여진 다관은 맑은 담황색을 내린다. 그 위로 피어오르는 안개와 같은 수증기는 가히 몽환적이다. 한 목수의 너른 참나무 찻상에 자리한 한 잔의 차를 들어 목넘이 하고 난 행복해졌다.

찻잔을 든 내 손끝이 도자기를 빚는 작가의 손끝과 교감하는 순간이다. 유백색의 분청화장토에 어린 차 색과 덕은 풀 내음을 들이키는 시간.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연신 음미하는 반복의 행위를 통해 난 작가의 삶을 이 공간에 들인다.

한국의 도자와 중국의 도자를 이야기할 때 차이점이 있다. 중국의 도자기는 화려한 그림과 무수한 칼의 사용으로 조각을 통해 만들어지고, 한국의 도자기는 물레 위의 흙과 손이 한 호흡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억지로 칼을 대거나 인위적인 것이 아닌 손을 대고 뗄 줄 아는 순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한국의 도자기다.

찻상을 만드는 목수의 손끝도 나무에서 대패를 뗄 줄 아는 순간에서 가장 좋은 목리를 얻는다. 무쇠솥에서 차를 덕는 과정에서도 온도를 인지하고 마무리하는 순간을 손끝으로 아는 것이다.

내 삶의 한결같은 시간의 반복은 늘 작가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결과를 통해 공간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있기에 호사요, 어찌 보면 진정으로 대접하는 것이며, 조율할 수 있음을 배운다.

무심코 사용하고 버리는 종이컵과 커피숍에서 테이크아웃한 플라스틱 컵의 문화 속에서 내 삶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오랜 시간 소중하게 만들어지고 가치 있는 것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적 가치_삶의 질을 높이는 시간, 내려놓는 자세를 배운다.

그리고 많은 작가의 서로 다른 작품이 하나의 공간에서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룸에 어울림을 배운다. 차를 우리기 위해 여러 작품을 상황에 맞추어 연출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저 무심코 티백 차를 넣고 물을 따르지는 않는다.

이런 공간을 많은 공간에 연출했으면 한다. 딱딱한 회사의 사무실이면 더욱 좋겠다. 업무의 바쁜 와중이라지만 잠시 나를 찾은 손님과 나를 대접할 수 있는 시간,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손끝의 호흡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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