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틸란드시아
수염 틸란드시아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6.13 2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알람이 울린다. 어김없이 울어대는 아침 여섯 시. 나의 알람은 토요일인 주말에도 쉬지를 못한다. 이 날은 나를 깨워 사무실 대신에 농막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날에 그이는 농막에서 자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주 금요일은 내가 허락한 그이의 외박이다. 아파트보다 그곳을 더 좋아하는 그이를 위한 배려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은 나에게도 꿀 같은 시간이 된다.

농막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한 바퀴 시찰하는 일이다. 그이가 올해는 화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도를 넘어 보인다. 갈 때마다 가짓수가 늘어나 있다. 처음에는 화려한 꽃을 사들이더니 필 때만 예쁜 모습에 “화무십일홍”을 한탄한다. 그 한탄은 종류를 바꾸었다.

다육이로 시선이 옮겨간 그이는 나의 눈길을 피해 주중에 일을 저질러 놓는다. 늘어날 때마다 먹히지 않는 쭉정이인 줄 알지만 한발 늦은 잔소리를 한다. 진주를 닮아서 사왔다느니, 황금빛이 나서 사왔다느니 변명이 긴 그이에게 정작 이름을 물어보면 다 다육이라고 한다. 말리기도 지쳐 이왕이면 이름을 알아오라는 말에 다육이에는 즉각 이름표가 달렸다.

새로 들어온 녀석이 있나 돌아보았다. 나뭇가지에 축 늘어뜨려져 있는 게 노인의 수염이 엉켜 있는 모습이다. 저런 보잘 것 없는 걸 했다. 이제는 하다 하다 별걸 다 사온다고 안에서는 속이 끓는다. 그이가 다가오기에 하얗게 눈을 흘기자 나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수염틸란드시아의 설명이 거창하다.

생긴 것에 비해 예외다. 미세먼지를 빨아들이는 공기정화식물이라는 것이다. 공기 중에 있는 먼지인 미생물의 양분과 수분을 섭취하며 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미세먼지로 희뿌연 날이 많아서 아파트에 가져가려고 사왔다고 한다. 공기청정기의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을 접하기에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으로 수염 틸란드시아를 미리 하잘 것 없다고 짐작해버렸다. 이처럼 생김새로 나의 어설픈 잣대를 들이대어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이어서 보면 선입견이 얼추 맞기는 하다. 옛말에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라는 말을 앞세워 이 나이에 내가 본 것이 전부 옳다고 생각해온 듯하다.

도종환 시인은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라는 시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내 마음이 그에게 다가가 그의 몸이 산화되는 쇠처럼 곁에 있는 내 몸도 함께 녹이 슬어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상대를 볼 때 꽃으로 보아야만 상대도 나를 꽃으로 대해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해 버리고 한 행동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먼저 치부해버린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이들에게 아픔을 주었는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사람을 누구나 꽃으로 보기에는 한참 시력이 모자라다.

아무리 내가 보는 눈이 있다 할지라도 인생을 도통한 연륜은 아니다. 혜안이라기 하기엔 세상을 보는 도수를 더 키워야 하는 쉰둘이다. 나이는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르는 법. 내 나이만큼의 책임을 지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아침이다.

허연 수염노인의 꾸짖음이 들려오는 듯하다. 내면을 보는 깊이를 키우라는 소리가 귀에 쩌렁쩌렁 울려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