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을 보내며
오월을 보내며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6.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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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곱새겨보니 봄밤이 짧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봄 해에 참 없이 키워야 할 새끼를 두고 오월이 조급한 까닭이다. 오월은 어미의 속성을 갖춘 거룩한 달이다. 여식이 어미가 되는 것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이치는 같아서 오월이 달 중의 으뜸이 아닌가 한다. 조각조각 뜯어보면 아니 그런 달이 없다. 가장 가까운 사월과 유월은 오월을 닮았고, 먼 달 12월도 어미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를 품어 잠재워 버린 겨울은 너무 쓸쓸하다.

나는 시월도 거룩한 달이라고 생각한다. 시월은 오월의 미래, 오월의 정신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오월은 꽃으로도 눈부시지만, 한 점 핏덩이를 쏟아 낼 때는 거룩하다. 농염한 여인은 아름답고 어미는 거룩하듯이... 수고의 시간을 뒤로하고 어미가 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어미의 바탕 위에 세워진 자식의 나라가 된다. 세상 속에 세상 하나가 탄생한다. 그러므로 꽃 진 자리에 열매를 맺는 일은 엄숙한 의식이요, 영원으로 이어지는 축복이다,

꽃잎의 선혈이 낭자하다. 꽃무더기가 주검으로 내려앉은 걸 보니 곧 유월이다. 지난 사월을 묻고 돌아선 자리에 다시금 오월의 주검이다. 이 변화의 시간은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 사건에 불과한 것 같지만, 자연계의 모든 것이 어미가 되는 순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꽃은 아름다움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순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산화하였듯이…

유월은 기꺼이 오월의 분신을 받아 안을 것이다. 터질 듯한 뽀얀 젖가슴을 열어젖히고 살갑게 젖을 물리는 여인이 되리라. 언젠가 지는 꽃을 보다가 울컥했었다. 당신의 시간이 청춘인지 이승의 말미인지 조차 잊어버린 어머니를 보며 그랬는지, 내가 지는 것이 서러웠는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니 지는 꽃에 절망할 가슴이라면 오월을 사랑할 자격도 시월을 맞을 자격도 없음을 알 것 같다.

싸늘해진 주검 위로 채 식지 않은 붉은 꽃잎이 진다. 오월의 파편을 주워들고 지난 시간을 헤아려보니 여인의 세월도 함께 보인다.

`그대가 3월의 피막을 뚫고 뾰족뾰족 올라오더이다. 어찌 그리 고운지, 저 질긴 피막을 뚫고 나온 용기를 생각하니 신비로웠죠. 나는 어루만지며 기특하다. 기특하다. 말해주었죠. 방싯방싯 사월의 마당에서 겅중거릴 때는 치명적 초록이 어지러이 춤을 추더이다. 꽃 몽우리 피울 무렵 유혹의 소리 낭자하더니 마침내 그대는 초례청의 새 각시가 되더이다. 부끄럽게도 그만 그대의 아름다운 정사 장면을 보고 말았지요. 그대는 수줍은 새색시, 어미가 되는 의식은 성스러웠죠. 그대 안에 잉태한 핏덩이는 오월 그대의 분신입니다. 죽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사랑 앞에서 당신은 선혈을 쏟았습니다. 유월의 아침입니다. 아직도 그대의 주검이 머물러 있군요. 그대는 유월의 마른 볕에 화석이 되어가고 하늘엔 수많은 오월이 펄럭입니다. 그대는 진정 어미입니다.'

유월의 젖줄은 유들지나 유한하다. 염천 칠월과 팔구월 태풍에 핏덩이는 영글어가겠지만 오월의 숭고함에 미치지 못한다. 오월의 주검은 하늘의 뜻, 거룩한 어머니를 요구했으므로 오롯한 순명의 시간이었다.

이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시월은 융성한다. 피어나는 오월은 아름다웠다. 지는 오월은 숭고했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은 오월의 사이사이에다 자신들의 의미를 새겨 걸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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