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6.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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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사람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관찰과 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 보는 것이고, 하나는 사물이 지닌 외형적 이미지를 통해 사람의 경우에 대입해서 정서적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는 사물을 이용하기 위한 시각인 데 비해 후자는 사물을 통해 사람을 비추어 보기 위한 시각이다.

십장생 중의 하나인 학(鶴)은 사람들이 정서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대표적 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학이 오래 산다는 것은 관찰의 결과이지만, 사람들이 학이 걷고 나는 모습을 보고 춤을 떠올리는 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학을 바라본 결과이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학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시로 읊고 있다.


학(鶴)


人有各所好(인유각소호) 사람마다 각각 좋아하는 바가 있고
物固無常宜(물고무상의) 사물은 원래 항상 마땅히 그래야만 한 것은 없다네
誰謂爾能舞(수위이능무) 누가 학 너를 춤 잘 춘다고 했나
不如閑立時(불여한입시) 한가롭게 서 있는 때만 못한 것을


멀리서 대충 보면 사람은 비슷한 것 같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도 사람마다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시인이 관찰한 바로는 그렇다.

그러면 사람이 아닌 사물은 어떠할까?

사물은 피상적으로 보면 언제나 같은 모습이지만, 자세히 보면 한 시도 같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특정 사물을 보면 으레 어떠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쉬운데, 따지고 보면 사물에게는 본디 항상 그래야만 하는 모습은 있을 수 없다. 이 또한 통찰력 있는 시인의 오랜 관찰 결과이다.

시인은 학(鶴)이라는 새를 예를 들어 설명을 시도한다. 사람들은 학을 보고 춤을 잘 춘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학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다. 학에게는 아예 사람들이 만든 춤의 개념 자체가 없다. 학이 걷고 날고 하는 모습이 우연히 사람들의 춤사위와 비슷할 뿐이라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춤을 잘 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학에 대한 고정관념일 뿐이다. 그래서 시인의 눈에는 학이 춤출 때보다 한가롭게 서 있을 때가 더 낫게 보인다.

꾀꼬리는 노래를 잘하고, 국화에는 과연 오상고절(傲霜孤節)이 있는가? 그것도 항상 변함없이 말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학이 춤을 잘 춘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고정관념일 뿐이다. 고정관념을 만든 것도 사람이지만, 고정관념을 깨는 것 또한 사람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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