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6월 10일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7.06.0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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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내일이면 어느덧 6·10 민주항쟁 30돌이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전환점이 되는 계기나 시간이 있겠지만 6월 10일은 나에게 두 가지 의미에서 각별한 날이다. 하나는 내 삶의 외형적 형태를 규정한 날이고, 또 하나는 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심어준 날이기 때문이다.

1980년 6월 10일 아침,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 지역방송사의 정문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초 여름날의 아침 햇살이 출입문 유리창에 반사되어 내 눈에 가득히 쏟아지던 그 빛 사이로 낯설고 살벌한 광경 하나가 비수처럼 꽂혔다. 철모를 쓰고 착검한 M16 소총을 든 군인 두 사람이 출입문 양 옆에 비석처럼 서있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후 발효된 계엄령으로 계엄군이 국가주요시설인 방송국 경계를 서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 장면을 간직한 채 그날 이후 30여년을 프로듀서로 방송 밥을 먹고 살았으니 소위 직업이라는 나의 외형적 정체성이 확정된 날이었다.

또 다른 6월 10일은 1987년의 그날이다. 1980년 입사이후 정보기관원들이 방송국에 상주하다시피하며 방송내용까지 챙기던 시기에 언론인이기를 포기하고 그저 직업인으로 살아가던 그때 6·10 민주항쟁은 나의 내면적 삶에 전환점이 되었다.

1986년 이후 전두환 군사정권의 탄압은 더욱 심해져 수많은 국가보안법 사건과 시국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터지면서 국민적 저항운동에 불이 붙었고,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그리고 6월 9일 시위도중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이한열군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드디어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공식 주도한 국민대회의 불길이 전국에서 타올랐다. 6월 민주항쟁의 특징은 넥타이부대의 등장이었다. 그때까지는 시위하면 대학생들과 민주단체 회원들이 주축을 이루었는데, 그해 6월엔 일반시민과 직장인들마저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군중을 향해 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대고 무자비한 진압에 나섰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날, 시위대가 방송국 앞을 지나며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회사를 들어가던 길에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쥐구멍이라도 파고들고 싶었다. 9시 시보와 함께 시작하는 뉴스의 첫 머리를 항상 `전두환대통령은...'으로 장식해 `땡전뉴스'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그런 방송국을 다니면서도 언론인임을 자처하며 살아온 내 삶이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퇴근 후에는 최루가스 자욱한 거리에서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에 뛰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방송이 나가야할 길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고민의 결실이 언론노동조합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고, 내가 살아가야할 가치관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6·10 민주항쟁 이후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직선제개헌으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감격을 누렸고, 진보정권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비폭력 촛불집회로 대통령을 탄핵시켜 보수정권 10년의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것은 6·10 민주항쟁에서 보여준 시민 저항정신의 발로였다.

6·10 민주항쟁, 그날의 시민정신이 또다시 우리나라를 바로 세우는 원동력이 되기를 소망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역동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맞는 6.10 민주 항쟁의 의미가 그 어떤 때보다도 가치 있고 깊게 느껴지는 것은 진정 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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