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소동
현수막 소동
  • 김경수<수필가>
  • 승인 2017.06.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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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경수

 노 영감 건물에 깜짝 놀랄 사건이 터졌다. 노 영감 허락도 없이 유통회사 현수막을 이곳저곳에 붙여 놓은 것이었다. 얼마 전 노 영감 건물에 작은 유통회사가 세입자로 들어왔다. 노영감은 건물을 애지중지하느라 세입자들에게 지나칠 때가 있었다. 건물에 함부로 못질을 하거나 흠집을 내면 당장 쫓겨날 수도 있었으며 속히 변상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세입자인 유통회사는 건성으로 대충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유통회사에 다니는 박 대리가 판매촉진과 홍보를 위해 건물 안팎으로 눈에 잘 뜨이는 복도나 벽에 홍보 현수막을 붙였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노 영감은 현수막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화가 난 노 영감은 계약을 한 세입자를 불러 큰 소리로 3일 안에 당장 철거를 명령하였다.
 드디어 주어진 3일의 시간이 다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현수막은 버젓이 붙어 있었다. 노 영감은 계약을 한 세입자를 당장 불러 보았지만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노 영감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현수막을 철거하였다. 조금 지나 박 대리가 현수막이 없어진 광경을 보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였다.
 박 대리는 경찰에게 누군가 자신이 붙여 놓은 현수막을 없애 자신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했다. 그때 노 영감이 나타나 당당하게 자신이 철거했다고 했다. 노 영감은 경찰에게 계약한 세입자에게 철거명령을 내렸는데도 이들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자신이 직접 철거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 말에 박 대리는 저 현수막은 자신의 것이며 자신의 물건에 손해를 입힌 자에게 그 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박 대리는 철거하라는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 누군가 저만치 숨어서 그 광경을 엿보고 있었다. 계약을 한 세입자였다. 어쨌든 경찰은 아무리 건물주라 할지라도 절차를 무시하고 함부로 철거하는 것은 합당한 행동이 아닌 듯 말을 했다. 경찰은 두 사람이 원만한 해결을 보라고 권유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한 경찰이 저만치 노 영감을 불러 현수막을 제자리에 붙여 놓으라고 귀띔을 하자 노 영감은 펄쩍 뛰며 그 자리에서 거절하였다. 또 다른 경찰은 박 대리에게 현수막을 제자리에 붙여 놓으면 괜찮겠냐고 말을 하자 박 대리는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하였다. 경찰이 돌아갔다. 곧바로 박 대리는 노 영감 앞에서 법률상담을 받겠다고 전화를 했다.
 그 순간 노 영감은 무언가 켕기는 듯 찔끔거렸다. 노 영감은 어찌해야 할지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박 대리는 바쁜척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전전긍긍하던 노 영감은 하는 수 없이 현수막이 붙어 있던 자리에 다시 붙이느라고 분주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박 대리와 세입자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정말 박 대리는 철거하라는 말을 못 들은 것일까? 노 영감은 자신의 손으로 붙여놓고 철거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우두커니 철거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서로 상호 간에 원만한 배려와 타협이 있었다면 그들 사이에는 모나지 않은 인정들이 둥글게 오갔을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갑은 강자로서 약자인 을에게 군림하듯 지배하는 것 같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아무리 힘이 약한 을이라도 지혜와 용기를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갑을 견제하면서 갑에게 자신의 권리를 찾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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