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傾聽)
경청(傾聽)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6.0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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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수필가>

 아침저녁으로 걷기 운동을 나가다 보니 천변의 풍경을 관찰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재두루미와 백로의 고기 잡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요즘은 백로들이 새끼들을 데리고 사냥을 하는 모습도 발견하게 되는데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미 새는 새끼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긴 다리를 아주 천천히 움직이다 가벼우면서도 재빠르게 부리를 물속으로 집어넣는다. 아마도 새끼에게 먹이 잡는 법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리고 뒤이어 어미 새 주둥이에는 어김없이 물고기가 물려 있다. 새끼도 낚시를 시작한다. 어미처럼 천천히 걷는가 싶더니 이내 온몸을 물속으로 던지고 만다. 실패다. 새끼는 몸의 물을 털어내면서도 또 잠시 뒤 온몸을 물속으로 던진다. 숨죽여 구경하던 나는 그만 “주둥이만 가볍게, 재빨리 집어넣어야지!” 하고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닌가. 답답함에 소리를 질렀더니 어미와 새끼 새가 놀랐는지 후드득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새들도 자신들만의 육아법이 있는 것을 사람인 내가 끼어드니 자연 황당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것은 사람뿐만이 아닌 모든 날짐승 들짐승도 마찬가지 일터이다. 그런데 어미 새 모두가 낚시를 잘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느 새는 몇 번을 주둥이가 물속을 들락거려도 허탕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조금 전 어미 백로의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른 새와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 새는 고개를 갸웃갸웃거리며 물속을 바라본다. 다리는 조용하면서도 천천히 움직이면서 말이다. 그것은 마치 물소리를 듣고, 고기들이 하는 말을 듣는 모양새였다. 그것도 모르고 고기들의 움직임을 아주 분주해 보였다. 수면위로 번지는 물무늬가 그것을 말해준다.
 올리버 웬델 홈즈는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어미 백로야말로 지혜로운 동물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 사회는 상대방을 잘 설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말하기에 대한 수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손짓은 어떻게 하고, 얼굴 표정은 어떻게 하고, 옷차림은 어떻게 하며 머리모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업을 말이다. 굳이 말하기를 연습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앤드루 카네기는 `경청'을 매우 중요시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그가 어떤 모임에서 식물학자의 얘기를 듣게 됐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식물들과 새로운 품종 개발 계획에 대해 카네기는 오히려 상대방의 말에 몰입하며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식물학자는 “경험한 것 중 오늘이 가장 재미있는 대화였으며 탁월한 식견과 지혜에 경의를 표한다”며 카네기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카네기는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으며 대화 도중 자신의 의견은 한마디도 내지 않았지만 `좋은 소통'이라고 각인시켰다.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현대사회에서, 카네기의 `경청'은 차분히 상대에게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소통의 지혜인지를 알려주게 한다.
 우리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에도 바쁘다. 불행하다는 사람이 많은 나라, 자살 1위의 나라.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대화의 기술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언성이 오가는 대화가 아니다.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공감해 주는 `경청'이야 말로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대화의 기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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