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만 기억하는 애국
현충일에만 기억하는 애국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06.06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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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올해도 어김없이 현충일이 돌아왔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국군장병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6년 지정된 법정기념일인 현충일이 올해로 62주년이었다.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인간이 바둑 대결을 벌일 만큼 초고속 성장을 했고, 100세 시대를 살만큼 호시절을 누리는 요즘 현충일은 그저 직장인에겐 휴일이고, 학생에겐 학교를 가지 않는 날 정도로 여긴다.

시대가 변해서인지 현충일 날 조기를 게양한 가정을 찾기도 어렵고, 학교에서 순국선열을 되새기기 위해 개최했던 웅변대회나 편지쓰기 행사도 드물다.

몇 년 전 교원단체가 벌인 설문조사에서`6월 6일이 무슨 날인가?'라는 질문에 88.8%가 현충일이라고 대답했지만, 이날이 왜 공휴일인지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답변이 49.4%를 차지했다. 절반이 현충일이 왜 공휴일로 지정됐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빨간색으로 표시된 공휴일로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끄러운 일이다.

매년 현충일이 되면 대전 현충원에 묻힌 제자를 찾아가는 교감 선생님이 있다.

6일에도 그는 아침 일찍 서둘러 13년 전 떠나간 제자 K를 만나고 왔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고교 친구들이 동행해 떠나간 제자는 외롭지 않았겠지만 제자를 가슴에 묻은 교감선생님은 이날 술 한 잔 기울였다.

금천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시 K는 담임을 맡고 있던 반 아이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5살까지 미국에서 살았던 K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만 19세가 되면서 제자는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고, 조언을 듣기 위해 한국에 있는 스승을 찾았다. 당시 교감선생님은 제자에게 “한국과 미국에서 멋지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군대에 가라”고 권유했다. 제자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미국의 대학을 휴학하고 귀국해 해병대에 입대했다. 하지만 훈련과정에서 앓게 된 폐렴이 악화돼 2004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미국 국적을 포기한 제자를 홀연히 떠나보낸 교감선생님에게 6월은 떠올리기 힘든 가슴 아픈 달이다.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K는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을 선택했다. 비록 현충원에 묻혀 있지만.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 한 대목. 미국 지도교수가 한국 유학생들에게 “배운 지식을 모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데 왜 한국 학생들은 유학 오면 눌러앉을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했다고. 지인의 자녀는 유학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

청문회를 앞둔 한 장관 후보자는 딸의 이중국적 논란에 대해 군대 회피용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국민을 설득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바람직한 국가관은 아닌듯 하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국가관은 달라진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식을 통해 애국의 대가가 말뿐인 명예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국가보훈처를 장관급 부처로 격상시키겠다고 발표한 것은 의미가 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을 뒤늦게나마 새 정권에서 되돌려 놓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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