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국가다운 주권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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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6.0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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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게 사드와 관련해 아무런 자료도 넘기지 않았다. 사드는 안보를 넘어 외교와 경제 등 우리 사회 전반은 물론 국제사회에까지 메머드급 파장을 미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대 현안이다. 사드와 관련한 정보를 완벽하게 확보하고, 그를 토대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새 정부의 급선무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를 컨트롤하며 사드 도입의 결정과 실행, 배치를 주도해온 김 전 실장은 새 국군통수권자에게 사드와 관련해 A4용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 그의 직무유기는 국방부 보고누락 사태의 예고편이 됐다.

무엇보다 국정기획자문위 업무보고서 초안에는 있던 사드 4기의 핵심 내용이 검토 과정에서 모두 삭제된 것은 의도적 보고 기피로 볼 수밖에 없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추가 반입된 사드 4기를 물었을 때 “그런 게 있었느냐”고 되물었다는 대목 역시 새 정부의 눈·귀를 막으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둘 수 없게 한다. 그렇지않아도 지금까지 사드가 결정되고 반입되고 배치되는 전 과정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채 진행됐다. 일방적이면서 기습적이었고 때때로 기만적이었다. 국민은 그동안 국가안보에 직결된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을 받아들여 정부의 독주를 묵인해 왔다. 그러나 향후 사드 정책을 주관해야 할 새 정부까지도 국방부 정보 통제의 대상이 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 할 수 없다.

국방부의 이해 불가능한 행태를 보다보면 두 달전의 씁쓸했던 해프닝이 오버랩된다. 지난 4월 트럼프 미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나눴던 한담을 떠벌렸다. 그는 “시 주석으로부터 역사수업을 받았는데, 한반도가 한때 중국의 일부(part of China)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당시 궁금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다 이런 대화까지 주고받았는지 의아했다. 동맹국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낼 수도 있는 무례한 대화를 굳이 언론에 공개해 논란을 유발한 트럼프의 속내도 궁금했다. 우리 외교부의 침묵도 이상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이라 그냥 넘어갔다. 중국이 “두 정상은 그런 얘기를 나눈 적 없다”고 부인함으로써 한국의 체면을 세워줬으면 하는 바람은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중국 정부는 우리 외교부가 가만히 있자 스스로 나서 “한국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도닥였다. 뭘 걱정하지 말라는 건지 국민들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만, 우리 정부에선 어느 누구도 국민을 대신해 중국에 그걸 물어봐주지 않았다.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이해찬 특사가 받은 예우를 보면 걱정하지 말라는 그들의 말과 달리 걱정이 깊어진다. 우리 특사는 접견 자리에서 시 주석의 아랫 자리를 배정받아 외견상으로는 배석한 시 주석의 참모들과 같은 급의 대우를 받았다. 김무성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특사로 파견됐을 때 시 주석과 나란히 앉아 독대했던 모습과는 천양지차 였다.

트럼프가 느닷없이 사드 배치와 운용에 들어가는 비용 10억달러(1조1300억여원)를 한국이 내야한다고 억지를 부린 것도 한반도 속국 발언이 논란이 된 이후의 일이다. 그가 국가간 합의를 한마디 말로 뒤집는 만용을 어디서 배웠을까. 예정지의 격렬한 반대에 봉착하고 중국의 뭇매를 맞아가면서도 사드 도입과 배치를 미국의 구미에 맞춰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던 우리가 일조한 것은 아닐까. 그는 시 주석을 만났을 때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느니 하는 잡담에는 열심이었지만, 사드 때문에 중국에 당하고 있는 동맹국의 처지를 거드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최근 국방부의 청와대 보고 누락 문제가 터지자 미 국방부는 “한국에 사드가 반입·배치되는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보고 절차에서 국민은 물론 대통령까지 소외시킨 우리 국방부가 미 정부에 대해서 만큼은 한치의 숨김없이 완벽한 보고로 일관했던 모양이다. “한국 국방부가 우리와는 투명한 절차를 밟았으니 청와대가 문제 삼을 필요없다”는 취지의 미 국방부 발표는 한국은 한 때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한 시 주석의 발언에 대해 “한국은 걱정할 필요없다”고 한 중국 정부의 오만한 해명과 다르지 않다.

사드 배치의 결정과 추진이 대한민국의 정당한 주권 행사라면 “도대체 어느 나라 국방부냐”는 비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당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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