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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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진희 기자
  • 승인 2017.06.0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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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공진희 (진천주재)

`식당보조 구함. 가족같이 일하실 분. 전세3천(큰방1,작은방1,주방).'

일자리와 일손, 임차인과 임대인을 구하려는 전단이 전봇대에 매달려 사람들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그 위에는 전기와 전화, 인터넷 등 인간과 문명의 이기를 이어주는 선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넘쳐나는 사이버 공간과 신문, 지역 정보지를 마다하고 전봇대를 소통의 장으로 택한 이들에게는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어려움보다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연연하지 않는 여유가 느껴진다.

컴퓨터로 출력해 반듯하게 인쇄된 것들 사이로 손으로 꾹꾹 눌러 쓴, 맞춤법도 드문드문 틀린 알림 문구에는 소박함과 정겨움도 묻어난다.

미처 메모할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연락처를 몇 개 덧붙여 놓아 떼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전몰 병사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민주주의 이념을 간단 명료하게 밝힌 명연설을 남겼다.

당대 최고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이 1시간 동안이나 했던 연설에 밀려 링컨의 짤막한 연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링컨은 단 2분간의 연설로 행사의 핵심적인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큰 찬사를 받았다.

우리는 탄핵정국과 대선을 치르며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과 집단의 막말과 고성, 삼척동자보다 못한 저급한 언어의 향연을 지켜봤다.

언술은 화려하되 진심이 느껴지지 않고, 내가 말하되 자기화되지 않은 말들이 들려왔다.

일부 유권자와 특정인 지지자들에게서는 `나'의 주체성과 정체성은 사라지고 내가 속한 정치 `진영'의 논리만이, 내 편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집단'의 정체성만이 펄펄 살아 움직이는 끔찍한 현상을 겪어야 했다.

대화와 소통은 사라지고 적인지 동지인지를 밝히라는 일방적 주장과 통보가 넘쳐났다.

말과 글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언어는 말하는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언어는 인간의 의식 차원을 넘어서 사고의 틀을 정형화하기도 하며 언어가 인간의 사고방식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 패권경쟁의 시험대가 된 우리의 현실에서 이 난제를 풀어내야만 하는 사회 지도자들에게 전봇대의 전단처럼 소박하되 목적과 대상이 분명하고, 링컨처럼 짧지만 핵심을 짚어내며 살아남은 자의 역할을 분명히 밝힌 품격있는 언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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