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잘 모르시죠?
저 잘 모르시죠?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7.05.3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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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노자의 도덕경에는 “강과 바다가 온갖 계곡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래로 처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할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쩍쩍 갈라진 모습을 보면서 도덕경의 한 구절이 생각나고, 그 생각에 이어져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인 가뭄도 걱정이지만, 그보다는 4대강의 흉물이 더 깊은 근심을 만든다.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이라는 해석은 그 깊이와 크기만을 일러 말하지 않음이다. 오히려 말초신경처럼 온 산하(山河)에 퍼져 있는 물의 근원, 즉 계곡의 아래에서 묵묵히 모든 사연을 담아내면서 세상의 모든 흐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을 자연의 흐름을 시사한다. 무릇 성인은 백성 위에 서려고 할 때는 반드시 그 말을 낮추고, 몸 또한 뒤로한다는 가르침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물길을 막아선 4대강 사업의 폐해로 인해 도덕경을 무색하게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본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당연하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그 당연한 질서를 무시한다.

자연 그대로의 물길은 평등하다. 경사가 있되 급하지 않고, 높낮이가 있되 욕심이 없다.

아래에서 윗물을 온건하게 받아야 할 4대강이 서울 남산 2개만큼의 웅덩이로 만들어 놓은 순간 평등의 질서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 무거운 깊이만큼의 욕망은 낮은 데로 임하는 지상의 평화를 무시한 지하의 탐욕이다. 그 탐욕이 시퍼렇게 썩어가면서 생명을 말살하고, 이 참혹한 가뭄에도 쓸 수 없는 물이 되고 있음은 경계하고 중단되어야 하며, 당연히 고쳐져야 할 일이다.

거대한 탐욕의 4대강 물그릇은 자연의 질서 기준을 파괴한 욕망에 불과하다. 강의 밑바닥을 긁어냄으로 인해 고요했던 지류 하천과 계곡은 욕망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그 결과 윗물이 빈 그릇으로 남는 참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런 지류와 하천의 비어 있음은 결과적으로 수증기의 상승과 구름, 그리고 강우 등의 자연적 순환 고리를 이어가지 못하게 하는 셈이다.

4대강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처를 정치보복이라며 눈 흘기는 지지계층이 만만치 않다는 어느 지방 정치인의 탄식을 듣고 도덕경의 한 구절을 생각한다. 그러고도 가셔지지 않는 답답한 마음은 `지금', `여기', `나'의 역사성 너머 “저 잘 모르시죠?”라는 의문문으로 어김없이 이어진다.

녹음이 짙푸른 길. 자전거 뒷자리에 어린 소녀를 태우고 가는 어떤 이의 뒷모습. 거기에 `저 잘 모르시죠?'라는 문구와 `노무현입니다'라는 문장이 위아래로 적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티저 포스터의 모습이다.

이미 본 사람들에게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은 꼭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다큐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 사는 세상의 존엄함과,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았던 분노와 열정, 그리고 눈물 쉴 새 없이 흘러 먹먹한 가슴에도 주먹 불끈 쥐게 하는 시대의 서러움이 있다.

푸른 5월이 간다. 그리고 이 땅에는 다시 피로 물든 자유와 민주주의의 고통이 새록새록 배어 나오는 유월이 찾아올 것이고, 우린 당분간 슬픔과 고통이 지워지지 않을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반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리를 너무 쉽게 서로를 모른 척하며 살고 있다.

5월이 유월에 묻는다. “저 잘 모르시죠?”거기에 당당하게 “우리는 국민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집단지성으로 시작되는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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