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동네 - 참나무배기
내가 살았던 동네 - 참나무배기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팀장>
  • 승인 2017.05.3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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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팀장>

날이 참으로 덥다. 짧은 시간만이라도 더위를 피해 그늘로 발을 옮긴다. 나뭇잎 사이의 따가운 햇볕이 얼굴을 때린다. 왜 이 나무의 가지는 성근지 원. 두터운 잎사귀 아래의 그늘이 그립다.

햇볕이 내 얼굴을 때리니, 눈가나 이마에 주름이 생긴다. 땅도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가뭄에 노출된 땅은 갈라지고, 조금의 바람에도 농로는 먼지 덩이다.

가뭄이 지속하다 보니 농수로 곳곳에 구멍이고, 구멍을 이은 물 호스는 여지없이 근처 논으로 연결되어 조금의 물이라도 더 대려는 농민의 애를 보여준다.

이쯤의 계절에 꽃이 만발하는 나무가 있다. 떡갈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로 참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나무크기와 생김이 서로 다르지만 동일하게 `도토리'라는 열매를 맺는다. `아콘'성분을 함유하고 있는데, 중금속과 여러 가지 유해물질을 흡수하여 배출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도토리묵을 쑤어 먹는다. 김 가루와 다진 김치를 넣은 묵밥이 이 더위에 더욱 생각난다.

나무껍질의 `탄닌'성분은 섬유의 견뢰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예로부터 어망을 담가 질긴 어구를 얻는 데 사용되었다. 물론 굴참나무의 껍질로는 지붕재로 사용했다. 병마개로 사용하는 코르크를 얻기도 한다. 나무줄기는 `모락톤'이라는 성분이 있어 음료를 숙성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에 술을 저장하거나 숙성시키는 통으로 만들었다. 바로 오크통이다.

참으로 재미있고도 진귀한 나무이다. 오죽하면 참나무라고 했을까? 학명도 `쿠에르쿠스'라고 하여 眞木, 인간 삶에 녹아 가장 사람을 이롭게 하는 나무이다. 이맘때, 논에 모내기 줄을 띄우고, 모내기를 하다가, 더위를 피해 새참을 먹을 때는 늘 참나무 밑으로 갔다.

다른 논에는 미루나무가 많았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참나무배기가 있었다. 봄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새참을 먹고, 나뭇잎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을 피해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고, 여름이면 사슴벌레, 하늘소 등 집게벌레를 잡는 놀이터가 되고, 도토리가 익는 가을이면 돌과 나무도끼를 가지고 도토리를 털던 곳이다.

상수리나무가 있고, 짚신에 깔았던 신갈나무, 떡을 싸면 쉬 시지 않기에 떡갈나무 잎을 뜯던 곳이다. 화력이 좋고 불 담이 좋아 아궁이 땔감도 참나무였다. 타다 남은 숯을 화로에 넣고 군밤과 고구마를 구워먹게 해주었던 나무이다. 그런 나무가 무성했던 참나무배기.

내가 다니는 회사 뒤편이 참나무배기였다. 안덕벌에서 대대로 나고 자랐기에 그 시절을 그리워하나 보다. 아파트를 지으면서 밀어버린 터이다. 지금서 나무를 심고 키운다 한들 그 시절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안덕벌에 그 시절의 참나무배기를 재현하고 싶은 심정이다.

얼마 전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영국의 작가, 스위스의 큐레이터가 다녀갔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전통기술과 감성, 정신을 잃었고, 지금서 그 가치를 알았음에도 다시 돌이킬 수 없음에 한탄을 한다. 우리를 부러워한다. 한번 잃은 것을 되찾는다는 것이, 그 가치를 알고 지켜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을 알면서, 지키고자 한다. 후회하지 않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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