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미래
알파고의 미래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05.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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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시(詩), 서(書), 화(畵). 예로부터 선비라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익혀야 할 필수 과목들이다. 그런데 고수들은 여기에 하나를 더 꼽는다. 바로 바둑(棋)이다. `시서기화'라는 말이 전해 내려왔던 이유다.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등장으로 더욱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된 바둑은 그 역사가 기원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는데 중국 은나라(BC 16-11세기) 시대의 것으로 확인된 갑골문자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거북 껍질에 쓰인 문구 중에 바둑을 뜻하는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후 공맹 시대에 바둑은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논어 양화편에 `하루 종일 배불리 먹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바에는 차라리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게 낫지 않는가'라는 뜻의 구절이 나온다. 맹자에도 `(바둑은)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잘하기 어렵다'는 구절이 있다. 적어도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기원전 4~5세기부터 널리 퍼졌던 것으로 보인다.

실물 증거도 나왔다. 아주 오랜 옛날의 바둑판이 잇따라 중국에서 출토됐다. 1952년 하북성에서 후한 시대의 장군(AD 182년경 매장 추정)의 묘에서 석제 바둑판이 나왔다. 이후 2000년에는 중국 전한시대 경제(景帝, BC 157~141년)의 양릉 유적에서 도자기제의 바둑판이 발견됐다.

그러면 바둑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 일설에 의하면 요순시대 요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믿기엔 바둑은 그 변화무쌍함과 심오함이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있다.

한 수의 착점이 곧 천변만화를 불러오고, 끝내 종국의 결말에 영향을 미치는 지구 상에 전래하고 있는 가장 오묘한 `게임'. 사는 순간, 매 시점 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또 그래서 스스로 자기 계발을 통해 더 나은 길을 찾는 우리 인생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바둑. 그래서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공지능의 인간 정복. 세계 바둑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가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에서 3대 0으로 완패했다. 대국 후 커제는 “바둑을 둘 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전혀 갖기 어려웠다”면서 울먹였다.

신의 경지에 다다라야 그 해답의 끝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인간이 생각했던 바둑을 컴퓨터가 정복했다는 의미다.

비관적인 시각의 언론들은 영화 `터미네이터'를 거론하며 장래에 인간이 인공지능에 의해 정복당하고 끝내 파멸할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선 미국의 IT 기업이 1997년 군사 방위용으로 개발한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스스로 진화하면서 자신을 제어하려는 인간을 적으로 간주, 핵미사일을 발사해 인류를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한다.

이를 의식해서일까. 대국 직후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알파고의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인공지능이 인류가 새로운 지식영역을 개척하는 것을 돕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나 과학 등 분야에서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도구'로서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인간 최고수와 바둑을 두면서 그야말로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 보여준 인공지능. 그 끝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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