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 선생(1)
벽초 홍명희 선생(1)
  • 김홍숙<문화해설사 · 소설가>
  • 승인 2017.05.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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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김홍숙

독립 만세/ 아이도 뛰며 만세/ 독립 만세/ 어른도 뛰며 만세/천둥인 듯/ 개 짖는 소리 닭 우는소리까지/산천이 다 울린다/ 만세 만세//

지동인 듯/ 산천도 빛이 나고/ 땅덩이가 흔들린다/ 해까지도 새 빛이 난 듯/ 이것이 꿈인가?/ 유난히 명랑하다/ 생기라고 꿈만 같다/ 국민의무 다하라고 분부하신 님의 말씀//

-벽초 선생이 해방의 감격 속에서 쓴 시 `눈물 섞인 노래'전문 -

벽초 홍명희 선생은 1888년 7월 2일 괴산군 괴산면 인산리에서 홍범식과 은진 송씨 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풍산. 호는 벽초이다.

3세에 모친이 별세하고 5세에 독선생 두고 천자문. 소학 등 한문 공부를 시작한다.

8세에는 글 모듬과 한시를 짓고 삼국지를 읽었다 한다.

13세에는 참판 여흥 민씨 민영만의 딸 민순영과 결혼한다. 당시 양반 집에서는 으레 조혼을 했으며 정신 연령이 높았다 한다. 16세에 아들 홍기문이 출생한다.

아버지와 15세 차이로 형제와 같은 부자로 토론을 많이 했으며 세상 이치나 학문에 대하여 논쟁이 잦았다. 1902년 상경하여 중교의숙에 입학하여 공부했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 되던 해 중교의숙을 졸업하고 괴산으로 온다.

당시 양잠기술 전수로 왔던 일본인 부부를 따라서 동경으로 유학을 떠난다. 도쿄 다이세이 중학교에서 서양문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독서에 탐닉한다.

5년 동안의 유학생활에서 호암 문일평,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등과 하숙집에서 만난다.

신간 서적이 수북한 벽초는 톨스토이의 작품과 토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백치 바이런의 카인 작품을 만난다. 조선의 삼재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은 `우리가 조선의 신문학을 건설해야 한다'며 기염을 토한다.

1910년 학업을 포기하고 괴산에 와서 러시아 유학을 준비한다. 당시 일본은 청나라와 러시아 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을 완전하게 손에 넣으려고 순서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민족적 울분 때문에 학교도 포기한 그에게 을사늑약으로 비분 강계한 부친의 자결순국 소식이 온다. 23세의 벽초는 나라가 망한 것만도 견디기 어려운 충격인데 아버지까지~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하다.

`너희는 어떻게 하던지 조선 사람으로서 의무와 도리를 다 하고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일제 말 놈들이 갖은 회유와 협박을 다해도 내가 끝까지 친일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려 한 덕분일 것이다' 라고 훗날 벽초는 회상한다.

중국으로 건너간 벽초 홍명희는 동제사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나서는데 예관 신규식,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와 동고동락한다. 동년배로 담원 정인보, 호암 문일평이 있으며 해방정국에서는 안재홍, 조소앙, 김규식 등과 함께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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