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텃밭 인생
시골 텃밭 인생
  • 석재동 기자
  • 승인 2017.05.23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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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왕종일

이른 새벽 아침 예전 고고장에서 흔히 듣던 70년대 추억의 팝송 `다 함께 춤을(I was made for Dancin)'이 휴대폰에서 방 안 가득 울려 퍼지며 나의 잠을 깨우면 시골의 활기찬 아침 하루가 시작된다. 필자가 새벽 공기를 머금고 항상 하는 것이 있다. 우리 집 밥상에 오르는 상추, 치커리, 쑥갓 등을 조그만 텃밭에 씨를 뿌리고 심어놓았는데 이것들이 얼마나 싹을 틔웠는지, 그리고 먼저 심은 것들은 얼마나 자랐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아침의 일상이자 행복한 삶이다.

행복의 텃밭까지 가기 위해서는 논두렁길과 좁은 야산 길을 조금 걸어야 하는데 길가를 걷다 봄에 볼 수 있는 냉이 같은 봄나물과 여러 새싹을 보면 우리네 삶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도 알아주거나 봐주지도 않는 한적한 시골 좁은 길가에 이름조차 없는 잡초들도 봄에 싹을 틔우기 위해서 누가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푸르게 자라는데 우리 인간들은 길지도 않은 삶을 살면서 서로 시기하고 험담하면서 세상을 살다가 죽음 전에야 깨우치고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침 논두렁길과 좁은 산길을 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작은 개여울 도랑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면서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하고 마치 내가 딴 세상, 아니 지상낙원이라도 온 듯한 착각과 함께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오른다. 만약 내가 도시 속 빌딩과 아파트에서 살았다면 이런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살짝 머금어진다.

필자는 텃밭에 적상추, 담배상추, 치마상추, 치커리를 이른 2월에 심어 조그만 하우스를 설치하고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일찍 상추를 수확해 주말에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는 딸들과 오붓하게 삼겹살과 술 한 잔씩을 마시며 저녁을 보낼 때면 이런 것이 행복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주변에 많은 사람은 이야기한다. 정년퇴직하면 한적한 시골로 들어가 조그만 텃밭과 함께 인생의 노후를 즐기겠다고.

그러나 막상 이런 것들을 실천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도시에서 평생 산 사람이 농촌에 들어와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농촌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만 있지 않다. 여름에는 모기와 전쟁을 벌여야 하고 겨울에는 도시처럼 지역난방이 아닌 개별난방과 나무장작 등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무수히 많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어려서부터 지천명이 넘은 현재까지 쭉 농촌 시골마을에서만 살았다. 동네 가구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조그만 동네이기 때문에 아래윗집 모두 형님, 아우 하는 사이다.

오늘도 필자가 아침 텃밭을 산책 삼아 둘러본 후 출근하려고 동네 어귀를 지나는데 이웃집 형님들이 저녁 퇴근길에 아기 열무를 뜯어가란다. 이렇듯 소소한 정이 넘치는 우리 동네 시골 인심이 마음에 와 닿는다. 출근길 입가에서 옅은 콧노래가 나온다. 오늘도 아침이 즐거우니 직장에서도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퇴근길에 동네 앞 슈퍼에 들러 술 한 병을 사가지고 아기 열무를 건네주기로 한 형님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시골 야경을 즐겨보리라 생각만 해도 마구 힘이 솟는다.

이런 소박하고 행복한 삶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골생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만의 특권이 아닐까. 난 앞으로도 쭉 평온함 속에 사소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시골 텃밭 인생을 즐기면서 여유 있는 노후를 알차게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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