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과 또 하나의 연서
솔바람과 또 하나의 연서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7.05.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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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눈꽃이 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도무지 녹을 생각지도 않고 쌓여만 간다. 봄꽃봉우리 터지는 소리가 계곡을 뒤덮은 지도 한참이 지났건만, 오월 산자락에 쉼 없이 내리는 눈은 언제쯤이면 그칠까. 완연한 봄 속으로 무작정 달리고 싶은 햇볕 좋은 오후, 잔가지 사이로 스치는 바람이 설레게 한다. 풀빛을 먹은 초록과 희디흰 흰 저고리마냥 금방이라도 터질 듯 매달려 있는 아카시아 꽃, 그렇게 오월의 눈이 되어 내딛는 발길마다 산야도 나의 마음도 점령해 버려 달뜨게 한다.

바람이 인다. 취한다. 생전 어머니는 건강하면 자연이 보인다 했다. 발걸음도 떼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아니 감히 산길에 쌓인 눈을 밟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마음, 오월이 흔들어 놓는다.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간 꽃, 한복치맛자락에 수줍게 내민 버선코를 닮은 듯, 하늘을 향해 고개 든 한옥의 처마를 닮은 듯 도도한 여인의 콧대처럼 피어난다.

굴곡진 한옥의 처마의 아름다움은 선 아니던가. 코끝이 살짝 올라가야만 버선의 매력이듯 처마도 버선도 그리고 아카시아 꽃의 매력은 곡선 이른바 선의 아름다움이다. 끝이 마치 하늘을 향해 비상하듯 살짝 치켜 올려져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금방 날아오를 것만 같아야 한다. 단청처럼 화려한 색상은 아닐지라도 추녀와 함께 어우러지는 처마, 이는 곧 곡선의 전통미의 절정체이다. 눈이라도 내리는 겨울날이면 선을 따라 수북이 쌓인 눈은 여인의 한복 소맷자락과도 너무나 흡사한 처마, 그 선은 서양주택에선 아마도 표현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한옥에서 은은하게 번지는 소나무향처럼 산자락에 연서처럼 날아든 아카시아 향은 서양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또 바람이 인다. 덤이 있는 재래시장, 세월의 흐름 속에 조금씩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장터이지만 그곳엔 고향의 맛 같은 아카시아 향이 난다. 좌판을 펼쳐놓고 나물을 한 움큼 덤으로 주시던 노점상 할머니, 쪼글쪼글한 손길로 잡아당기며 손에 쥐어주던 할머니의 그 음료, 우연히 맛보았던 아카시아 꽃 엑기스에 매료된 난 그 후 아카시아 꽃 엑기스를 담기 시작했던 거다.

서까래에 매달린 옥수수처럼 한들한들 거리는 아카시아 꽃, 문실문실한 나무에 매달려 있으면 좋으련만 앙칼진 가시에 축 휘어진 가지 끝에 매달린 아카시아 꽃과 사투를 벌이며 채취를 했다. 손끝이 닿는 순간 퍼지는 향기는 조각조각 흩어진 유년시절의 추억은 물론 어머니의 향기까지 몰고 오기 때문에 가시에 찔리면서도 고집스럽게 담았다. 고향의 향수까지 꾹꾹 눌러 가득 채워진 투박한 옹기, 엑기스의 효능도 민간요법의 효능도 내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묘한 맛, 그리움의 그 맛이 있기 때문에 선호한 것이다.

가족들은 번거롭고 불편하다 아우성이다. 그럼에도 클릭한번으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데도, 바람에 흰 머리카락이 보였다 사라지는 나이임에도 고집스럽게 담금을 하는 이유, 고루하다 할지언정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일들이 거꾸로 돌아가 신생은 불편하고 추억을 찾기 때문이다. 아카시아 꽃이 옹기 속에서 발효가 되어 깊은맛을 내듯 아직도 하얗게 부서지는 산자락, 솔바람 속에 또 하나의 연서가 오월을 하얗게 덧칠하는 중이다.

올해도 아카시아는 물론 두릅, 엄나무, 취나물 등 지난해 담근 엑기스를 여러 곳에 노드매기 하느라 분주한 손길에 집안 가득 고향의 향수가 퍼진다. 삶 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매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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